초기 내한선교사들의 에큐메니칼 운동
한국의 기독교 선교는 미북감리회 매클레이 선교사의 방한(1884)과 미북장로회 알렌 선교사의 미공사관 공의 자격 입국(1884) 이래, 안수 받은 선교사인 미북장로회의 언더우드, 미북감리회의 아펜젤러가 내한(1885)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호주장로회(1889), 영국성공회(1890), 미남장로회(1892), 미남감리회(1895), 캐나다장로회(1898)가 순차적으로 한국선교를 개시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성결교회로 발전하는 동양선교회(1907)를 비롯해 구세군(1908), 오순절교회(1928), 복음교회(1935) 등의 선교가 이루어졌다.
침례교는 1895년 미국 침례교 계통의 선교단체인 엘라딩 기념선교회(Ella Thing Memorial Mission)가 충남 공주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선교회가 1901년 사업을 중단하게 되자, 1889년부터 한국 순회선교회 활동을 전개하고 있던 캐나다인 독립선교사 펜윅이 그 조직을 이어받게 되었다. 보다 체계적인 선교회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한 펜윅은 1906년 대한기독교회(大韓基督敎會)라는 독자적인 교회조직을 수립하게 되는데, 바로 이 교회가 오늘 한국 침례교회의 모체가 된다.
선교 초기, 이러한 다국적, 다교파의 기독교 선교지형은 선교현장에서의 경쟁과 갈등을 야기하기도 했지만, 이내 불필요한 경쟁을 극복하고 협력과 일치를 위해 구체적으로 노력하자는 각성과 공감이 전향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각 교파 선교회 간의 제휴와 협력, 일치의 노력
각 교파 선교회 간의 제휴와 협력, 일치의 노력은 장로교 선교회에서 우선적으로 이루어졌다. 1889년 미북장로회와 호주장로회 간에 ‘장로교선교부연합공의회’(United Council of Presbyterian Missions)를 시작으로, 1892년 미남장로회 한국선교 개시 이후인 1893년을 기해 ‘장로교회 치리기구 준행 선교부공의회’(The Council of Missions Holding the Presbyterian Form of Government)가 조직되었다.
이후 1898년, 네 개의 내한선교회(미국 남북장로회, 호주장로회, 캐나다장로회)가 참여한 ‘장로교선교부공의회’가 조직되었으며, 1901년부터는 한국인 교회지도자들도 공의회 회원으로 참여한 ‘조선예수교장로회공의회’(1901-1907)가 시작되었다. [장로교의 공의회 시대는 1893년부터 1900년까지의 ‘선교사공의회 시기’(제1기), 1901년부터 1906년까지의 ‘합동공의회 시기’(제2기)로 나뉜다, 차재명 편,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 상권』 조선기독교창문사, 1928.145.] 이 조직은 1907년 한국 최초의 장로교 단일조직인 독노회가 조직되기 전까지 한국장로교회의 치리적 최고기구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네 개 장로회 선교부의 연합과 일치는 이후 전개되는 한국 기독교 연합운동의 기초를 제공했다.

☞ 장로회선교사공의회 소속 선교사들이 ‘하나의 한국교회’ 조직을 목적으로 1897년 서울에서 선교사 회의를 열었다. [출처 : 기독공보]
이렇게 장로회 선교부들간의 일치와 협력이 전개되는 동안, 비록 장로교와 감리교에 국한되기는 했지만, 교파를 넘어선 선교협력과 일치의 모색도 병행되었다. 미국 북감리회와 남감리회의 선교부가 장로회 네 개 선교부와 연합사업에 동참하면서 1905년 3월 19일 ‘재한복음주의선교부통합공의회’(The General Council of Evangelical Missions in Korea)를 조직하였다. 이 공의회는 단순한 협의체를 넘어서서 교회의 완전한 통합, 단일교회 수립을 목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일치와 단일교회 수립을 향한 노력은 교리적인 차원이 아닌 정치적인 차원, 바로 각 교파 본국 선교본부의 비협조, 일부 내한선교사들의 반대,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여력과 열의 부족 등으로 인해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재한복음주의선교부통합공의회’는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가 출범하는 1912년, 공의체제(General Council)에서 연합체(Federal Council)로 그 성격이 변화되었다.
‘재한복음주의선교부연합공의회’는 기독교 선교의 효율성과 수월성을 극대화하며 교파 간 연합을 진작키 위해 정기적인 회의를 개최하며, 선교지역분할, 성서번역(성서공회), 문서출판(기독교서회), 연합 찬송가와 정기간행물 발간(『기독신보』, The Korea Mission Field), 교육과 으료분야의 협력(숭실학교, 세브란스병원 등) 등을 통해 각 교파 기독교의 역량을 통합해 한국사회의 근대화와 복음 선교의 수준과 영향력을 한층 확대해 나갈 수 있었다.
[참고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 자료집 제1권』 2019, 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