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복음주의선교부연합공의회는 한국 기독교의 첫 교파연합기구였다. 그러나 이는 선교사들만의 협의체였다. 1916년 본 공의회에서는 한국인 교회지도자들의 참여가 필요함을 결의했고, 1917년 6월 21일 평양에서 장로회 대표 네 명, 남북감리회 대표 일곱 명, 이상 11인의 위원이 모여 장ㆍ감 협의체를 조직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통해 이듬해 3월 26일 경성YMCA회관에서 ‘조선예수교장감연합협의회’(The Korean Church Federal Council, KCFC)가 창립되었다.
본 창립 협의회에서 회장 김필수 목사(장로교), 부회장 노블 선교사(북감리회), 서기 오기선 목사(남감리회), 부서기 함태영 목사(장로교)가 임명되었다. (『朝鮮耶蘇敎長監聯合協議會 第一回會錄』, 1918.1.)
본 협의회는 ‘조선예수교장로회’, ‘북감리회 조선연회’, ‘남감리회 조선연회’ 이상 세 개의 교파 대표들로 구성되었으며, 본 협의회의 창립 목적과 권한은 다음과 같이 명시되었다.
|
“두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정신을 증진케 하며 친목하는 정의(情誼)를 돈독케 함. 양 교회가 홀로 행하기 어려운(難) 일이 있는 경우에는 합력하여 행하기를 힘써 도모함. 두 교회가 교역상 경력과 지식을 서로 교환하여 그리스도의 사업을 확장함에 도움이 있게 함.” “본 회는 두 교회의 신경과 정치와 예배모범 등 일에 대하여서는 관섭치 못함.” |
조선예수교장감연합협의회는 기존의 선교사 중심의 선교부공의회의 차원을 넘어서서 한국인 교회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 개신교의 두 교파인 장로회와 감리회가 교회차원에서 조직한 첫 협의체였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크다.
참고로 1918년, 제1회 조선예수교장감연합협의회 회의록 중 회장인 김필수 목사의 서언은 아래와 같다.

|
緖言(셔언) 主(쥬) 그리스도의 祝福(축복)ᄒᆞ심이 今日(금일)조선교회에 와셔 成就(성ᄎᆔ)됨을 眞誠感謝(진셩감샤)ᄒᆞ노라 一天父(텬부)의 衆子(붓ᄋᆞ)를 一救主(구쥬)의 肢軆(지테)로써 敎派(교파)를 分立(분립)ᄒᆞᆷ은 但時機(다만시긔)와 場所(쟝소)에 依(의)하야 形式(형식)에 不過(불과)ᄒᆞ거ᄂᆞᆯ ᄯᅡ라셔 精神界(정신계)ᄭᆞ지 影響(영향)이 혹 잇슨즉 瓦相間(서로ᄉᆞ이)에 所感(소감)이 不無(업지못)ᄒᆞ더니 現今(현금)에 長老監理兩敎會(쟝로감리량교회)가 此(이)ᄅᆞᆯ 顧念(고념)ᄒᆞ야 一軆的聯合機關(톄뎍련합긔관)을 組織(조직)ᄒᆞ니 卽張監聯合協議會(곳쟝감련합협의회)가 是也(이거시)라 主(쥬)의 祝禱(츅도) 「彼等(뎌희)로 ᄒᆞ야곰 다 一(하나)이 되게ᄒᆞ샤 父(아바지)ᄭᅴ셔 我內(내안)에게시고 我(내)가 父(아바지) 內」(안)에 在(잇)ᄂᆞᆫ 것 ᄀᆞᆺ치 彼等(뎌희)도 我等(우리)의 內(안)에 在(잇)게ᄒᆞ샤 世上(셰상)이 父(아바지)ᄭᅴ셔 我(나)ᄅᆞᆯ ᄂᆡ신거슬 信(밋)게 ᄒᆞᄋᆞᆸ소셔」(요 17장 廿一)ᄒᆞ신 此(이) 聖訓(셩훈)의 恩惠(은혜)와 平康(평강)이 本會中(본회즁)에 恒在(항샹잇슬지)어다. 아멘. 1918년 5월 京城(경성)에서 金弼秀(김필수) |
【참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 자료집 제1권』 2019, 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