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의 예루살렘 대회 참가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는 1928년 국제선교협의회 예루살렘 대회에 대표를 파송하였다. 이 대회는 한국교회가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에 명실공히 참가한 첫 번째 대회였다는 데 그 의미가 깊다고 본다. 원래 10명을 예상했지만 6명(양주삼, 신흥우, 김활란, 정인과, 윌리엄 노블, 사무엘 모펫)으로 장로교 2명, 감리교 4명이었다.
# 농촌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다.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 대표들은 예루살렘 대회를 통해서 농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예루살렘 대회 참가 이후 귀국길에 농촌선교의 모범사례 답사를 위해 농업국가로 유명한 덴마크를 방문했다. 약소국 덴마크 농촌운동의 성공 사례는 당시 식민지였던 한국의 교회지도자의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도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예루살렘 대회에 참가했던 대표들은 귀국한 뒤 각자가 소속한 단체와 교파에 농촌부를 설치하고 농촌운동을 주도하였다. 이에 따라 기존의 한국기독교여자청년회연합회, 장로교회, 감리교회가 농촌운동을 시작하였고, 연합기구로서 농촌사업협동위원회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이후에 일제의 방해로 위축되다가 폐쇄되면서 좌절되었다. 한국교회의 농촌운동은 식민정부의 억압, 다른 한편으로는 농촌선교를 포함한 사회선교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결국 용두사미격으로 끝나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