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CC

1970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로의 전환과 기독교회관의 건립

입력 : 2026-06-27 13:45:04 수정 : 2026-06-28 11:43:50

인쇄

1969년 한국기독교연합회(Korean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KNCC) 총회에서 결의한 바대로 1970년 총회에서부터 공식적으로 기구의 명칭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NCCK)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명칭 변경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변화의 결과 기구의 회원은 국내 교파 교회만으로 한정되었지만 기구의 목적은 기존의 기독교 선교에 역점을 두었던 차원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이 균형감 있게 강조되면서 오히려 확장되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헌장

[제1조] 본회는 성서에서 가르친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성부ㆍ성자ㆍ성신의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고 이에 응답하려고 하는 한국에 있는 교회들이 모여 친교와 연구, 협의를 하는 단체이다.

[제4조] 본회는 아래와 같은 에큐메니칼 정신을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

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토대로 국내 및 국제교회간에 친교와 연합운동을 한다.

2. 교회간에 연합정신을 발휘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전도를 도모한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사랑으로 교회와 사회와 국가 및 국제적으로 봉사 사업을 한다.

4. 본회는 그리스도인으로써 모든 사업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증언자가 된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 시절부터 한국NCC에 미치던 국제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IMC)의 정신적 영향력이 축소되고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의 영향력이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1968년 WCC 제4차 웁살라 총회에서 정점을 이룬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신학이 한국에 깊이 수용되었음을 알리는 일이기도 하였다.

 

1969년 12월 17일, 한국기독교회관이 완공되었다. 한국기독교회관의 건축은 다양한 기독교 기관들이 모여 있을 번듯한 공간의 필요성이 오랫동안 제기되어 온 결과였다. 미연합장로회가 소유하고 있던 500여 평의 대지에 지하 1층을 포함한 11층의 건물로 건축된 한국기독교회관은 당시 삼일빌딩, 조흥은행 본점과 함께 서울의 3대 고층 빌딩이었다. 건축 당시 교계 언론의 반응은 지나치게 호화로운 건물이라는 비판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1970년대를 지나며 한국기독교회관은 한국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재야의 메카’라는 세간의 평가를 받았으며 한국기독교회관이 위치한 종로 “5가”는 한국기독교 에큐메니칼 운동세력의 대명사가 되었다.

 

“지난 70년대를 거치며 기독교회관은 반체제운동과 인권운동의 상징 혹은 메카로서의 이미지를 굳혀갔다. … 그래서 언제부턴가 기독교회관은 그 정식 명칭보다는 「종로5가」 혹은 그냥 「5가」라는 별칭으로 더 잘 통하고 있다.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 이제 운동권내에서 뚜렷하게 솟아오른 하나의 「세력」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별 저항감 없이 통용되는 「5가권」이란 말은 기독교회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개신교의 사회참여 세력을 가리키고 있다.” 【“재야의 메카, 기독교회관”, 『월간조선』 7권 6호, 1986.6., 335.】

 

이런 평가를 받게 된 것은 한국기독교회관에는 NCCK, 기독교방송,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한국기독학생총연맹, 한국교회엿어연합회 등의 연합기관과 대한예수교장로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등의 교단이 입주해 있었으며 이 기관들이 한국의 민주화ㆍ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적극적으로 동참했기 때문이다. 또한 2층의 강당에서 주로 개최되었던 종교 예식 형태의 “고난받는 이들을 위한 목요기도회”는 군사독재기 내내 정기적으로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시국집회였다. 이런 특징들로 인해 한국기독교회관은 한국 에큐메니칼 사회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1969년 KNCC가 NCCK로의 전환이 결정되고 동시에 한국기독교회관이 완공된 것은 1970년대 한국기독교 사회운동의 새로운 전기와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참고】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 자료집 제6권, 15-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