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부터 1987년까지는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새로운 국면의 시련기이자 암흑기와 같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절망의 그늘이 깊어질수록 새 시대에 대한 갈망과 도전은 더욱 응축되고 그 폭팔력이 내재되었다. 1987년 6ㆍ10민주항쟁과 1988년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이 만들어낸 역사적 성취와 변혁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이러한 역사의 예열(豫熱) 시대, 민주화와 통일을 향한 도약과 도전의 숨고르기를 위한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한국교회는 앞서 열거한 정치적, 민족적인 아젠더 만에 천착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이전까지 수입신학, 외국신학의 소개 단계에 그쳤던 한국 신학계에 민중신학, 토착화신학, 통일신학, 여성신학 등 다양한 한국적 신학의 논의가 심화되고 한반도의 현실문제에 응답하는 학문적 노력을 경주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아울러 기존의 보수신학도 심리학과 역사학, 사회학 등의 간학문적 연구풍토를 새롭게 조성하고자 노력했다. 【박근원, 강병훈, 박영희, 백천기, 김소영, “특별좌담 : 80년대 한국교회, 무엇을 했나?”, 「기독교사상」, 1989년 12월호, 84.】
교회 차원에서는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1984-85)이 전개되어서 전국적으로 각종 기념대회와 행사를 치러 한국교회가 진보와 보수를 넘어 크게 협력했던 시기였으며, NCCK 60주년(1984)을 맞아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정체성과 미래를 모색하는 전환기이기도 했다. 60주년을 맞은 NCCK는 새로운 선교신학과 실천의 과제로서 교회의 연합과 일치(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 통일찬송가 편찬 등), 민족통일운동과 민주화를 성취하는 것이 이 시대의 뜨거운 요구이며, 교회가 마땅히 담당해야 할 선교적 과제라는 인식을 새롭게 공유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박근원, 강병훈, 박영희, 백천기, 김소영, “특별좌담 : 80년대 한국교회, 무엇을 했나?”, 「기독교사상」, 1989년 12월호, 82-90.】
1987년 민주주의의 성취는 당시 한국교회도 진보와 보수를 떠나 보편적으로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의 대세였다. 다만 1988년 NCCK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 이후 분단현실에 대한 역사인식의 차이와 이념적인 갈등으로 인해 더욱 선명해진 한국교회의 분화현상은 1980년대를 돌아봄에 있어 가장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1980년대 후반부터 촉발된 한국교회의 이념적, 신학적 분화는 1990년대에 이르러 더욱 심화, 첨예화 되어 갔다.
【참고】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 자료집 제8권, 22-2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