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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유연성' 토론회 스케치 및 발제 전문

입력 : 2006-02-10 04:45:47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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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사회위원회(위원장 문대골 목사)는 2월 7일 오후 2시,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대한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다.

지난 1월 20일 한·미 양국은 제1차 장관급 전략 대화에서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한 바 있다. 정부는 이번 합의가 전 세계적 차원으로 진행되고 있는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의 일환이며, 합의조항에 "합의문의 이행에 있어서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조항을 포함시킴으로써 한반도 평화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은 단순한 변화인 양 치부하며, 오히려 이 문제가 공론화 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사회단체들은 이 문제가 우리 국가 안보에 중대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사안으로 판단하고 앞다투어 우려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토론회 등을 개최하여 이번 합의의 심각성을 여론화해 가고 있는 상황이다.

 

교회와사회위원회 역시 1월 27일 성명을 발표한 바 있으며, 금번 합의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려내기 위해 긴급토론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이날 토론회는 정진우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선교사업국장)의 사회로 정상모 논설위원(MBC)의 발제에 이어서 이철기 교수(동국대학교 국제관계학과)와 정욱식 대표(평화네트워크)의 논찬과 플로어 전체 토론 순으로 진행되었다.

 

정상모 위원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키로 합의함으로써 한미 관계가 매우 중대한 국면으로 들어섰다."고 전제하고, "이 합의로 인해 한국은 미국의 국제분쟁 개입을 위한 미군의 군사적 발진기지로 전락하게 됐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과의 무력 분쟁 당사국으로부터 적대행위나 공격을 당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고 이번 합의의 의미에 대해 평가했다.

 

또한 정 위원은 문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정부 관계자들은 오히려 이 문제가 공론화 되는 것 자체에만 극도의 경계를 보내고 있고, 군 관계자들 역시 미국의 전체적인 군사 전략이 변화되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아직도 미국의 의지에 따르는 것이 우리의 안보를 지키는 길이라는 과거의 인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첫 번째 논찬자로 나선 이철기 교수는 이번 사건은 "한국전쟁 이래로 안보 정책의 가장 큰 변화이며, 국민 기만극"이라고 평가했다. 한마디로,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이 한반도의 안전만을 위해서였던 것이, 이제는 신 냉전 체제 구축을 통한 동북아 전체 문제에 관여하기 위해서라는 미국의 이해를 관철시켜 줌으로써, 동북아의 상황 변화에 따라 우리의 생존이 종속되는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욱식 대표는 '전략적 유연성'이란 주한미군의 유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In, Out, Through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즉, 병력을 유입, 유출, 거쳐가겠다는 것이고, 장비를 들여오고, 내보내며, 거쳐가겠다는 것이고, 임무의 유연성을 두어 대북 억제력을 오직 한국군에 맡길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 예로, 장비의 유연성을 합의해 줌으로써 핵무기가 반입될 수도 있게 되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아래는 정상모 위원의 발제문으로 전문을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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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유연성의 의미와 우리의 과제

 

정 상 모 (문화방송 논설위원)

 

 

1. 한미 전략적 유연성 합의 내용과 과정

 

한국과 미국이 지난 1월 20일 한미동맹 협상 사안들 중 가장 민감한 문제였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키로 원칙적으로 합의함으로써 한미동맹 관계가 매우 중대한 국면으로 들어섰다. 이 합의로 인해 한국은 미국의 국제분쟁 개입을 위한 미군의 군사적 발진기지로 전락하게 됐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과의 무력 분쟁 당사국으로부터 적대행위나 공격을 당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악몽의 시나리오는 중국과 타이완의 무력분쟁 사태에 휘말리는 상황이다. 자칫하면 이 합의가 민족 절멸의 재앙을 초래할 한반도 전쟁으로 귀결될 단초가 될지도 모른다는 심각한 문제 제기마저 나온다.  

 

반기문 외교통상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이날 한미간 제1차 장관급 전략대화에서 합의한 공동성명 내용의 골자는 ①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존중한다 ②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것 등이다. 여기서 전략적 유연성이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하여 주한미군을 포함한 전 세계 주둔 미군이 특정지역에 얽매이는 붙박이 군대가 아니라 기동성과 신속성을 갖춘 기동타격대 성격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리로 지난 2001년 911사태 이후 미국이 강력히 추진해온 전략이다.

 

문제는 주한미군의 이동시 한국 정부와 사전협의를 해야 한다는 조항조차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와 같은 합의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우리 민족의 사활이 걸린 문제에 걸맞는 문제인식을 얼마나 투철하게 갖고 전략적 이익의 확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느냐는 점이다. 최재천 의원이 지난 2월 2일 제기한 전략적 유연성 논란에서 정부 당국이 기본전략이라도 갖고 있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외교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의 문제점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선 2005년 4월 5일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작성한 문건에서 드러난 사실들을 보면, 첫째, 미국은 한반도 방위만을 목적으로 한 한미동맹군을 중일, 중대만 분쟁에 관여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 지역동맹군 체제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 둘째, 미국은 타이완 사태 및 군산 항공기의 중국 초계 활동에 대한 입장을 전달함으로써 타이완 분쟁이나 중국 영토 초계 활동에 주한미군을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을 전했다. 셋째, 전략적 유연성 합의로 미군의 미사일방어체제나 핵무기 배치 등에 대해 우리가 포괄적 양해를 해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넷째, 미국이 침략을 받지 않은 경우에 주한미군을 한반도 이외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으며, 외교부 조약국은 한미 합의 때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는 것 등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위의 둘째와 셋째 사실을 부인했지만, 우리 민족의 사활이 걸린 사안들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처럼 사활적 문제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과정이 최소한의 공론화 과정은커녕 보고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독단적인 비밀주의적 행태로 진행됐다는 것은 너무나도 충격적이다.

 

비밀주의적 진행과정의 문제점들을 보면, 첫째, 외교통상부가 지난 2003년 10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는 내용의 교환각서 초안을 미국 쪽에 보내고서도 이를 대통령과 국가안전보장회의에 보고조차 하지 않고 추진했다, 둘째, 국가안전보장회의도 2004년 3월 김숙 북미국장으로부터 뒤늦게 이 사실을 보고 받았으나 곧바로 대통령에 보고하지 않아 2005년 3월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해 한국 쪽이 기존 합의를 전면 부인하는 것으로 미국 쪽이 해석하게 만들었다, 셋째, 사전협의의 필요성과 관련해 통제절차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미국의 완강한 입장을 고려해 뺐다는 것 등이다.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은 한미간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로 동북아 균형자론은 전면 폐기됐다고 주장하고, 참여정부 국가안보전략 기조인 동북아 평화번영 정책과 다자안보추진, 균형적 실용외교까지도 사실상 철회된 것이 아닌가 의문을 갖게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도 공개질의서를 통해 국회의 사전논의와 동의없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중대사항에 대한 국회의 비준동의 의무를 명시한 헌법 60조 위반이라며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2. 정부 당국의 입장과 문제점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월 3일 공식 입장 발표를 통해 전략적 유연성 합의 내용과 관련한 논란은 소모적인 논쟁으로서 이와 같은 패배주의적 문제제기는 실익이 없다고 오히려 비판하고 나섰다. 그 비판 근거로 첫째, 2003년부터 실무차원의 정부 내 논의가 있었고, 지난 해 2월부터 한미간 본격 협상이 진행됐다. 둘째, 최종 합의된 내용은 한국과 미국 어느 한 쪽만의 의도대로 되지도 않았고, 상호 현실을 존중해서 나온 적절한 합의다. 셋째, 앞으로 쌍방의 필요에 따라 융통성 있게 운용될 수 있도록 한 것이며, 어느 한 쪽에 불리한 것이라는 해석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우리 정부의 의견이 무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가 있지만, 우리 정부가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며, 미국과의 신뢰와 교섭력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융통성 있게 우리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다. 넷째, 정부 협상 팀이 전략적 유연성 부분을 수용키로 합의해놓고 이후 이를 번복하지 않았느냐는 문제는 점검 결과, 미리 합의된 게 없었고, 협상은 진행중이었으며, 협상과정에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결론 났다는 것 등이다.

 

정부 쪽은 한미 상호방위조약과의 충돌 여부와 관련해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법률적 권리의무를 규정하지 않은 정치적 문건이므로 상호방위조약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사전협의 조항에 대해서는 미래의 불확실한 상황을 가정해 사전 협의 조항을 요구, 한미동맹에 생채기를 내기보다는 원칙적인 합의를 토대로 상황이 발생하면 그 때 논의하자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모호한 사전 협의 규정으로 주한미군의 이동을 막을 수도 없고, 주변국이 미군 개입에 대해 한국의 양해를 얻은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우선 정부 쪽이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협상과정에서, 2003년 10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는 각서를 한국 외교통상부가 미국에 보내놓고, 국가안전보장회의와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대목부터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문제의 각서 초안은 외교부 북미3과의 실무자 차원에서 작성된 것으로 당시 정부지침의 범위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정부 쪽 설명이지만, 첫째, 정부지침의 범위가 전략적 유연성 수용을 포함한 것인지, 그렇다면 2005년 3월 이를 부인하는 노 대통령의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발언이 어떻게 나왔는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둘째, 각서 초안 당시 정부지침이 애초 없었다면 정부의 외교전략 부재로서 근본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으며, 설혹 지침이 없었더라도 국가의 안위와 관련된 중대한 사안의 보고를 누락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외교부가 공동성명은 법률적 권리의무를 규정하지 않은 정치적 문건이므로 상호방위조약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정치적 문건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문건이 선언적 의미에 불과해 법적 효력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문건 내용에 구속되지 않아도 된다면, 주한미군이 동북아 분쟁에 개입할 경우 한국민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내용의 실효성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권리만 존중되고, 한국민의 의사 존중 의무 조항은 선언적인 수사로 사문화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사전협의 조항을 두지 않은 이유로 실효성이 없다는 근거를 내세웠지만, 우리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반영할 최소한의 기회조차 포기한 게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나온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 쪽 주장대로 미국과의 신뢰와 교섭력을 바탕으로 우리의 입장을 얼마든지 반영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이번 합의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만 일방적으로 존중하는 꼴이 된다면 문제는 그야말로 심각하다.

 

한국이 미국의 필요에 따라 주한미군이 언제라도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 투입될 미국의 군사적 전진기지로 된다면, 한국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미국의 국제적 분쟁을 지원하는 동맹국이 됨에 따라 무력분쟁에 자동적으로 연루될 위험성이 농후하다. 무엇보다도 우려되는 것은 한국이 중국 견제를 위한 전초기지로 전락하는 경우이다.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로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재배치가 완료되면 지휘구조가 단순화, 통합화한 미국의 동북아 또는 아태지역 통합사령부체제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으며, 특히 평택 미군기지에 미사일방어체제를 위한 탐지레이더와 항공기 탑재 무기가 배치될 경우, 중국에 대한 전략적 견제 기능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야말로 매우 우려되는 사태다. 이런 움직임은 동북아 신냉전 대립구도의 형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제동향이 그대로 진행된다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가능성이 실종됨은 물론, 전쟁과 신냉전의 재앙적 위기에 휩싸일 위험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기 때문에 정부 당국은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대한 논란을 패배주의적 문제 제기로 몰아붙이기만 할 게 아니라 이제라도 그와 관련된 문제점들과 이에 대한 대책과 과제가 무엇인지 오히려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거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당국의 주장대로 과연 미국에 대한 신뢰와 정부의 교섭력을 기대하고 있기만 해서 될 일인지, 냉철하게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전개돼온 한미관계를 돌이켜 보더라도 한미간의 협상이 한마디로 미국의 일방적인 의도대로 진행돼 온 터라 앞으로도 그러한 행태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이 과거와 달리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킬 특단의 비법이 있는지 모르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 민족이 분쟁에 휘말려 심각한 재앙의 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이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미동맹의 성격과 문제점 및 전개과정, 전략적 유연성의 배경과 한미간 논의 경위, 동북아 동향 등의 고찰을 통해 전략적 유연성 합의로 인한 한국의 동북아 분쟁 연루 및 한반도 위기의 가능성과 이에 대한 대책과 과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3. 비대칭적 한미 동맹관계와 미국 일방주의

 

한미 동맹관계는 한국이 애초 동맹 상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점에서부터 태생적으로 비대칭적이다. 역학관계에서도 국력의 차이가 현격한 만큼 비대칭적이다. 이런 관계에서 강대국은 물리력 행사를 하거나 정치경제적 보상을 통해 동맹국의 선택과 행동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전략적인 이익에서도 한국과 미국은 서로 다르다. 초강대국 미국은 세계적 차원의 패권전략 차원에서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및 반확산, 미사일방어체제 구축, 대테러전쟁 등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전략적 목표 우선순위는 한반도에서의 전쟁 방지, 남북관계 개선 및 한반도 평화정착, 동북아지역의 안정 등이다. 패권전략을 추구하는 미국과 한반도의 안정을 추구하는 한국이 위협에 대한 인식과 그 대응방식이 상이한 데서 한미 동맹의 근본적인 비대칭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비대칭적 동맹관계에서 약소국은 강대국에게 안보를 의존하는 대신 자율성의 제약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약소국이 동맹 상대국의 군사력에 의존하는 정도에 반비례하여 그 국가의 대내외 정책결정과 수행의 자율성은 그만큼 약화된다. 특히 한국군의 작전통제권까지 미국에게 이양한 상태에서 한국 쪽의 자율성은 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한반도 위기상황이나 전쟁 발생시 미국이 한국의 국가이익보다는 미국의 국가이익에 따라 대처할 여지가 많아 보인다는 점이다.

 

「동맹의존 이론」(alliance dependence theory)에 따르면 약소국은 포기와 연루라는 두가지 위험성과 두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위기 발생시 동맹 상대국이 안보공약의 책임을 이행하지 않거나 동맹으로부터 탈퇴 또는 적국과 협력관계를 맺거나 지원을 하지 않는 등의 포기의 두려움에 처하게 된다. 또한 약소국이 자신의 이익이 아닌 동맹 상대국의 이익을 위해 원하지 않는 국제분쟁과 갈등에 휩싸이는 연루의 위험성에 빠질 수 있다. 동맹딜레마를 겪게 되는 것이다.

 

지난 냉전기간 동안 주한미군은 북한의 남침시 대규모 증원군의 투입을 통해 전쟁을 억지하는 인계철선으로 미국의 안보공약을 이행한다는 보장을 함으로써 한국은  포기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일방적인 주한미군 철수로 인해 한국은 포기의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은 한국의 의사와 관계없이 1949년 주한미군을 완전 철수시켰으며  정전협정 체결 이후인 1954년에도 미 제2사단과 7사단만 남고 나머지 미군은 떠났다. 1969년 닉슨독트린 선언에 이은 1971년 미 제7사단 철수, 카터 미 대통령의 주한미군 완전철수 정책 추진, 1996년부터 한국군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다는 1980년대 말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구상에 따른 1992년 1단계 주한미군 7000명 감축 등 미국의 주한미군 철수정책은 한국정부와는 충분한 상의도 없이 미국의 입장에 따라 일방적으로 단행됐다.

 

이처럼 우리는 약 5차례에 걸친 주한미군 철수에서 보듯이 미국을 상대로 실질적인 협상권을 갖지 못했고, 미국의 중요한 대일관계 및 대중관계 변화의 순간에도 우리의 국가이익은 배제되기 일쑤였다. 1945년 이후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우리나라에게는 거의 예외 없이 강대국간 합의가 외교관계의 상수로 간주돼 왔다.이 합의도 미국의 국가이익에 따라 미국의 일방적인 의사에 따라 한국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루어졌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국가이익에 반하여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이나 전쟁상황에 자동적으로 연루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미국은 한국의 요구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지만, NATO처럼 침공당할 경우 자동개입 규정을 두지 않았다. 이처럼 미국은 자신의 이익과 별 상관이 없는 한반도 문제에 연루되는 것을 회피하면서도 자신의 국가이익이 걸려있는 문제에는 일방적으로 적극 개입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1994년 미국이 한국 정부와 협의도 하지 않고 대북 무력제재를 검토한 경우가 그러한 사례다.

 

특히 한국은 2002년 미국이 선제공격전략 독트린을 채택한 이후 미국의 패권전략에 따라 한반도 지역 이외에서 발생하는 분쟁 상황에 연루되는 위험성에 직면하게 됐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동맹관계의 척도로 삼겠다며 한국군의 참전과 지원을 요구했다. 미국이 냉전기의 전쟁 억지전략을 선제공격전략으로 바꾸어 심지어 예방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상황에서, 한국은 국제전쟁은 물론, 1994년 위기처럼 미국의 선제공격에 의한 한반도 전쟁에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4. 미국의 패권전략과 전략적 유연성

 

911 사태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당면 최대의 정책 사안으로 삼았다. 미국은 불특정 대상으로부터 불특정 수단에 의한 비대칭적 위협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전략개념의 변화를 모색했다. 미국은 2002년 1월 러시아와 중국 이외에도 북한을 비롯한 5개 비핵국가들까지 선제 핵공격 대상에 포함시킨 「핵태세검토보고서」(NPR)를 발표한 데 이어 2002년 9월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를 통해 테러 및 대량살상무기의 위협 제거를 국가안보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단독행동 및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는 선제공격 독트린을 선언했다. 과거 냉전시대의 억지전략 대신 선제공격의 제한을 허무는 공격적인 안보전략이 등장한 것이다. 미국은 이 전략을 바탕으로 선제는 물론, 예방적 군사행동까지도 벌이겠다는 방침이다.

 

미국은 이러한 세계전략 변화에 따라 미군 병력구조의 개편작업에 나서 2003년 11월 해외 미군기지 조정계획(GPR)을 발표했다. 이 계획의 핵심은 미군의 경량화, 기동화, 신속화였다. 전략적 유연성과 기동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해외주둔 미군 전체를 신속기동군 형태로 전환하고 재배치를 추진함으로써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 계획 추진의 기본원칙으로 (1) 동맹의 역할 확장 및 새로운 협력관계 구축, (2)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유연성의 증대, (3) 초지역적 접근, (4) 신속전개 능력 향상, (5) 규모가 아닌 능력에의 중점 등을 제시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2004년 9월 23일 미국은 전력을 상황과 필요에 따라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아무런 거리낌없이 이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한미군도 이 계획에서 예외가 아님은 물론 오히려 미국의 중심적 사안이었다. 미국은 탈냉전기인 1990년대 초부터 추진해온 군사혁신에 따라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를 모색해 왔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한반도의 주한미군 주둔가치가 북한의 위협 대처보다는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이익을 유지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이 북한의 남침 저지를 위해 주둔한다는 의식은 이미 이 때부터 시대적 현실과 동떨어진 과거 냉전시대의 유물이 되고 있었던 셈이다.

 

미국의 주한미군 역할 변화 모색은 2002년 12월 한미 양국은 제34차 한미안보연례협의회(SCM)에서 미래의 주한미군 청사진을 공동연구하는 약정서(TOR)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2003년 개최된 한미동맹 미래구상회의(FOTA)에서 정부차원에서의 동맹조정에 대한 공식적인 협의가 시작됐다. 이 해 9월 말 미국은 주한미군의 기동군 역할, 즉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동의를 한국 쪽에게 요구했다. 한국 쪽이 한미 상호방위조약상 주한미군의 한반도 밖 이동을 허용할 근거가 없다고 하자 미국 쪽은 한국이 미군의 이동권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냐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이 문제는 미국의 대한 방위공약 확약, 주한미군 한반도 밖 전쟁 억지력 유지, 한국과의 사전협의 등을 조건으로 정치적 타결을 본 것으로 보도됐다.

 

당시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기본적으로 존중한다는 입장에서 동북아 지역에서의 분쟁에 미군이 개입할 경우 우리 의사와 관계없이 무관하게 이뤄져서는 안 되지만 주한미군 등이 동북아 외의 지역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양해할 수 있다고 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이러한 절충적 입장의 문제점은 외교전략의 일관성이 결여된 데서 비롯된 것이며, 미군의 전 지구적 군사정책에 대한 정책적 입장으로서는 논리적으로 취약할뿐더러 국제적 분쟁 지역에 대한 한국군의 불요불급한 군사적 개입의 여지를 남기고 말았다는 점이다.

 

문제는 한미 양국이 전략적 유연성 논란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서 주한 미 2사단이 원거리 작전과 정밀타격 능력을 갖춘 미래형 사단(UEX: Unit of Employment X)으로의 개편 작업이 완료됐다는 사실이다. 이는 동북아 분쟁에 개입할 수 있는 신속 기동군으로의 전환이 끝났다는 의미다. 주한미군이 이미 한국 쪽과의 협의와 관계없이 대북 방어용 저지군에서 아시아태평양 신속기동군으로 변환한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과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화와 재배치가 전 지구적 테러리즘, 불량국가와 대량살상무기 등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측면 뿐 아니라, 이 지역에서 미국이 전략적 경쟁자로 지목한 중국을 견제제압하려는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동북아 분쟁 연루가 벌써부터 잠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5. 전략적 유연성의 문제점과 과제

 

한미 양국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로 인해 제기되는 문제점들을 정리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미국은 20세기 냉전 동맹체제에 이어 반테러를 명분으로 21세기의 새로운 동맹체제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동북아 질서관리의 기축으로 미일동맹으로 설정하고, 유례없이 동맹의 결속력을 일체화 단계로 강화하는 추세다. 문제는 미일 양국이 2005년 2월 19일 외교국방장관 회담에서 공통의 전략목표를 한반도와 타이완으로 설정하여, 북한과 중국을 봉쇄견제하려 한다는 점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로 이러한 미일동맹 체제에 한국이 편입돼 동북아의 신냉전 대립구도 형성이 가속될 수 있다. 동북아 신냉전 구도 형성은 한반도 분단체제를 유지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노력을 가로막는 역기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이를 결코 용인해서는 안 될 사태다.

 

2)일본은 미국의 페리제독의 내항 때부터 태평양전쟁 패전까지 약 100년간의 경험을 통하여 영미세력과의 동맹관계가 일본 외교의 성패와 직결되었다는 역사적 인식을 바탕으로 북한과 중국을 겨냥한 미일동맹 강화에 적극적이다. 북한과 중국의 위협론을 빌미로 내세워 군사대국화를 꾀하고 있는 일본의 공세적인 팽창주의 움직임에도 이번 합의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일본의 아시아 경시 외교노선이 한층 심화될 것이며, 역사왜곡이나 해외 영토 분쟁 도발을 통한 일본의 신민족주의 전략이 가속될 것이다.

 

3)미국의 세계 군사전략은 선제공격 전략이기 때문에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한 주한미군은 동북아는 물론, 전 세계의 국제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한국이 세계 주요 분쟁의 발진기지 역할을 하게 될 경우, 이러한 분쟁에 휘말려 분쟁 당사국의 적대적 공격 대상이 될 우려가 많다. 주한미군에 대한 한미 양국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이처럼 국제분쟁 개입을 위한 것으로, 평화주의를 명시적으로 규정한 우리 헌법 이념과 주한미군의 역할을 한반도 방어만으로 제한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위배되는 것이다.

 

4)기존의 한미동맹 관계는 미국의 억지전략에 따라 한반도 전쟁의 방지에 그 목적을 두었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미국에 대한 위협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한 선제공격 전략을 바탕으로 미국의 국제분쟁 개입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를 위한 동맹에서 국제분쟁 개입을 위한 동맹으로 한미동맹 관계의 질적인 전환을 뜻한다. 이는 한미동맹 관계의 중대한 변화다.

 

5)미국의 억지전략을 바탕으로 한반도 전쟁 발발을 억지해온 주한미군의 인계철선 기능이 사라짐은 물론, 한반도가 미국의 예방전쟁을 위한 전초기지로 주한미군의 주둔가치가 변화될 경우, 과거 냉전시대에 억지돼 왔던 한반도 전쟁의 위험성이 오히려 높아지게 된다. 한반도의 전쟁 방지를 위하여 가장 압도적인 세력이나 위협적인 세력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편승정책(bandwagoning)의 실효성도 매우 의심스럽게 됐다.

 

6)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체제를 지향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합의는 한반도와 타이완 등 동북아 분단벨트의 문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며, 북한과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 의도로 보일 경우, 6자회담의 해결전망도 어렵게 될 것이다.

 

7)불균형한 동맹의 경우, 동맹조약의 문구가 아무리 평등한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강대국에 의한 일방적인 보장의 성격을 갖는다. 이 경우의 동맹관계는 강대국이 약소국을 통제하는 방안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번 합의로 비대칭적 불균형성이 심화된 것이라면, 미국의 순응 요구가 한층 거세질 수 있다.

 

이처럼 한미 양국의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나름대로 전쟁 억지기능을 해온 한미동맹관계가 분쟁 지향의 동맹관계로 질적인 전환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 따라서 한반도, 나아가서는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미동맹관계, 주한미군의 역할과 기능 등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과제와 대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1)남북간 화해와 협력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실현은 우리 민족의 생존을 확보하고 번영과 통일을 지향하기 위한 절대적인 과제로서 헌법에 명시한 평화주의 원칙과 의지를 새롭게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도 동북아를 비롯한 국제분쟁에 한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연루되는 위험성을 차단할 방지책 마련이 시급하다.

 

2)한반도 평화체제의 바탕인 진정한 의미의 동북아 평화체제는 동북아공동체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동북아공동체 형성을 위한 노력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3)동북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북미, 북일, 한중과 일본, 미중 등 첨예한 갈등은 언제라도 분쟁으로 악화될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을 평화적으로 조정해결하기 위한 국제적인 다자적 접근 노력이 필요하다. 패권추구나 패권경쟁으로 동북아 평화가 깨지는 것을 막고 희망과 평화와 협력을 통한 공존공영의 21세기 동북아 평화구상도 이같은 노력의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한미동맹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통한 민족공동체 통일의 대전략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진행돼온 미래의 한미동맹 구상회의도 근본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 분쟁이 아니라 평화의 대전략이 미래의 한미동맹관계 구상의 기본원칙이 되도록 해야 한다.

 

5)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로 드러난 안보와 자주성의 동맹딜레마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과 노력이 필요하다. 안보와 자주성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비대칭적 동맹의 특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자주적 교섭력과 협상력 제고를 위한 다각적인 모색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