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9월 2일)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는 송환 3주년 기념행사를 가지며, 이들 남아있는 자들에 대한 2차 송환 촉구대회가 종교, 사회 인권단체 중심의 '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원회' 주관으로 열렸다.
여기엔 개신교 쪽에서 KNCC를 비롯해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가 함께하고 있고, 천주교인권위원회,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등의 종교단체와 민가협양심수후원회, 통일광장 등의 사회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여는 말씀을 통해 권오헌 상임대표는 인간의 한계상황 속에서의 전향은 원천무효라고 선언하며, 의문사진상규명위에서도 이를 인정한 부분이었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미국의 강경정책에 의해 촉발된 엄중한 위기상황을 돌파해 내기 위해서는 6.15 공동선언의 실현과 우리민족끼리 화합한다는 원칙을 견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이를 위해 2차 송환를 반드시 이루어 내자고 역설하였다.
경과보고에서 노진민 집행위원장은 2001년 전향 무효와 추가송환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33명이었고, 현재는 2명이 작고하고 1명의 개인적 사정으로 30명이 추가송환을 희망하고 있는 상태라고 보고하였다.
송환 3돌 기념 및 2차송환촉구 말씀을 통해서, 통일광장의 임방규 선생님은 2차 송환 희망자의 평균 연령이 이미 70세를 넘긴 상황이므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도 송환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남과 북이 2차 송환을 이루어서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현재의 위기상황을 극복해 나가자고 말하였다.
송환당사자 말씀에서 박종린 선생님은 3년 전의 송환이 역사의 한 장을 연 사건이었음에도, 전향공작을 위한 폭력이 자행된 부분에 대해서는 간과된 부분이 있다며, 폭력에 대한 피해 보상의 차원에서도 2차 송환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촉구대회의 순서와 성명서는 아래와 같다.
송환3주년 기념식 및 2차송환 촉구대회
사회 : 진광수 목사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총무)
- 비전향장기수 송환관련 영상
- 개회선언
- 민중의례
- 내외빈 소개
- 여는 말씀(권오헌 상임대표)
- 경과 보고(노진민 집행위원장)
- 송환3돌 기념 및 2차송환촉구 말씀
- 문화공연 (노래패 "암하렛츠"), (젊은소리꾼들의모임 - "바닥소리")
- 송환당사자 말씀 (정순택/박종린선생님)
- 2차송환 촉구 성명서 채택 (홍근수 목사님, 박용길 장로님)
- 폐회
<성 명 서>
비전향 장기수 2차 송환을 거듭 촉구한다
분단의 아픔을 안고 수십년 옥고를 치루면서도 통일된 조국만을 염원하며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양심을 지켜왔던 비전향장기수 63명이 북녘 고향으로 돌아간지 오늘 3돌을 맞게 되었다. 이 같은 1차 송환은 당사자들의 확고한 귀향 의지와 끈질긴 송환요구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비전향 장기수 송환 추진위원회를 비롯한 남북 온겨레의 한결 같은 뒷받침이 큰 몫을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6.15 남북공동선언이란 역사적 합의가 결정적 역할을 했었다. 바로 비전향 장기수 문제 해결등 인도주의 사업을 공동선언 3항에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었다.
7천만겨레에게 약속했던 6.15 남북공동선언은 어떠한 외세의 방해 책동에서도 흔들림없이 고수, 이행해야 할 우리민족의 자주와 통일로 가는 이정표 였다. 따라서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로 정권이 옮겨졌다 해도 이 민족적 과업은 멈출 수가 없다. 그리고 공동선언에서 밝힌 비전향장기수 송환사업 또한 성실히 이행해야 할 역사적 책무를 받아안아야할 것이다. 바로 귀향의지를 밝히고 있는 비전향장기수가 있는한 합의서 정신에 따라, 그리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위해 동포애와 인도주의 정신으로 반드시 북녘고향으로 송환되어야 할 것이다.
1차 송환 3돌을 맞고 있는 오늘 1차 송환자들과 다름없이 통일조국 염원을 안고 수십년 옥고를 치루었던 비전향장기수 30명이 그리운 가족을 그리며 북녘 고향으로의 2차 송환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오랜 권위주위 체제 아래 공안당국의 감시 통제로 고립 패쇄된 생활을 해 오면서 송환과 관련된 정보와 통보를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었고, 부당한 사상전향제도 아래 잔혹한 고문 등으로 강제 전향을 당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강제 전향은 전향이 아니었다. 이미 정부에서도 인권침해 등 위헌성을 들어 사상 전향제도와 준법서약서약제를 폐기 시켰으며 국가기관인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비전향장기수 의문사 진상규명 과정에서 잔혹한 고문등 강제 전향공작에서 죽임을 당했음을 확인하고 강제 전향의 위법성을 밝힌 바 있다. 또한 최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도 사상전향제도가 국제 인권규약에 위배 된다는 것을 78차 회의에서 결의 하면서 정치적 견해에 대하여 차별적 기초위에서 의사표현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서 '인권규약 제26조 평등권과 18조 1항 사상·양심의 자유, 19조 1항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고 규정한 바 있다.
그리하여 지난 2001년 2월 6일 위에서 말했던 장기구금 양심수들 전향무효선언과 함께 북녘 고향으로의 송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비전향 장기수 송환 추진위원회는 이들의 요구를 받아안아 이들 모두를 비전향장기수로 규정하고 6.15 공동선언 정신에 따라 아무 조건없이 송환할 것을 요구해오고 있었다.
2차 송환 희망자들 가운데는 전향과는 전혀 관계없는 전쟁포로 출신 13명도 있다. 이들은 처음부터 구속과 재판, 전향강요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전쟁포로의 국제법상 권리가 보장되어야 했었다. 전쟁포로는 생명 및 신체에 대한 폭행, 상해, 학대, 고문을 받지 아니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모욕적이고 치욕적인 대우와 부당한 재판, 형의 집행도 당해서는 안되었었다. 또한 적대 행위가 끝난(정전협정) 60일 이내에 북송되어야 했던 신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은 아직도 공동선언 정신과 관계없는 이른바 "다른 인도주의 문제"를 내세우면서 2차 송환에 확고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남북 사이에 또 다른 "인도주의 문제"가 있다면 협상과 합의를 통해서 별도의 과제로 실천할 일이지 비전향장기수 송환문제와 연계시키려는 태도는 당위성도 합리성도 없는 억지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주장하지만 비전향장기수 송환문제는 6.15 공동선언 합의 사항이고 그래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역사적 과제이다.
비전향 장기수 2차 송환이 늦어지고 있는데는 정부당국의 이같은 소극적 태도 말고도 6.15 공동선언을 흠집내며 남북사이의 화해협력 정책에 부당하게 간섭하고 핵선제공격을 말하는 등 미국의 전쟁 책동과 무관치 않다. 이에 맞서 우리민족은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며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공동선언 이행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미 남북사이엔 당국과 민간 부분에서 교류협력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만도 4대 경협합의서 발효 통지문을 교환했고 개성공단, 금강산 육로관광, 경의선 동해선 연결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는 남북선수가 손을 맞잡고 공동입장 함으로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다시 한번 온세계에 보여 주었다. 이처럼 아무리 외세의 내정간섭과 전쟁책동이 있다 해도 우리민족은 이어 결연이 맞서 6.15 공동선언 이행에 적극성을 보여야 할 것이고 그 실천사업의 하나로 비전향장기수 송환을 앞당기는데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2차 송환희망자들이 전향 무효 선언을 하고 송환을 요구하고 나선지 이미 3년이 되고 있다. 이들은 이미 많게는 89살된 장광명 노인을 비롯한 80살 이상이 8명이고 70살 이상이 17명이며 68살 이상이 4명 그 외 1명으로 대부분이 70살 이상 노약자들이다. 그리고 오랜 옥고와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그래서 올해 만 해도 김태수, 김경선 두 노인이 꿈에도 잊지 못할 고향을 찾지 못했고, 사무치게 그리운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정부는 이제까지의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남북사이의 화해협력을 촉진하는 본보기로 그리고 동포애와 인도주의 정신으로 정순택, 정순덕 노인등 비전향 장기수 30명을 조건 없이 송환 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
2003. 9. 2
비전향장기수 송환추진 위원회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민족민주열사추모연대회의/민노당자주통일위원회/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양심수후원회(광주,대구,대전)/불교인권위원회/불교장기수후원회/사월혁명회/실천불교전국승가회/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천주교사회교정사목위원회/천주교인권위원회/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천주교통일후원회/통일광장/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푸른영상/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인권위원회/한국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경 과 보 고
- 1989년
-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 천주교 장기수가족 후원회 발족
- 1991년
6. 18 장기수 석방과 후원을 위한 공동모임 결성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KNCC 인권위, 천주교 장기수가족 후원회, 고난모임, 불교인권위 등)
- 1993년
3. 이인모 선생 송환을 위한 추진위원회 결성
3. 17 이인모 선생 송환
6. 2 김인서, 함세환선생 송환 추진본부 결성
- 서울, 광주, 대전 동시 기자회견
- 1994년
10. 16 북측
- "남조선의 비전향장기수 구원대책조선위원회" 결성
- 1995년
4. 18 함세환, 김인서, 김영태선생, 송환을 위한 기자회견
- 1999년
12. 27 비전향 장기수 송환 추진위(준)결성
- 기자회견 (종로 연지동 기독교회관 2층)
비전향 장기수의 조건없는 송환을 촉구
- 2000년
1. 18 제1차 대표자 회의 (명동 가톨릭 회관 421호)
- 조직 구성 및 대국민 홍보사업
- 추진위(준) - 비전향 장기수 송환 추진위원회로 한다
1. 26 통일부 장관 면담 (세종로 청사 집무실)
2. 23 비전향장기수 송환촉구 토론회 (종로 연지동 기독교회관 2층)
3. 17 북측 구원대책 조선위원회 - 합동회의 개최 제의
3. 27 기자회견 (명동 향린교회)
- 광주지역 송환추진위원회 결성
4. 1 북한주민 접촉 신청서 제출 - 통일부
4. 18 북한주민 접촉신청 처리 결과 통보받음(불가) - 통일부장관
4. 20 비전향장기수 송환을 위한 《남북 해외단체 합동회의》 불허에 대한
- 통일부 규탄 기자회견 (명동 가톨릭회관 7층)
5. 3 대전. 충남지역 송환추진 위원회 결성
5. 9 ∼ 6. 13
- 6회에 걸친 송환촉구 거리서명 캠페인
6. 6 문화제 (한겨레통일문화재단 공동주최)
"남북정상회담 성공적 개최와 비전향장기수 송환을 위한 2000통일이여 오라!"
(여의도 한강변 둔치공원 야외무대)
6. 9 기자회견 (가톨릭회관 7층)
- 비전향 장기수 송환 촉구, 대상자 명단 발표
6. 15 남북정상회담
- 공동선언문 발표 (3항: 비전향장기수 전원송환 합의)
6. 20 부산지역 송환추진위원회 결성
6. 22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 환영 및 비전향 장기수 조속한 송환 촉구
- 기자회견 (명동 가톨릭회관 3층)
8. 21 비전향 장기수 송환 대상자 긴급 기자회견 (명동 향린교회)
8. 26 비전향 장기수 범 국민 환송식 (연세대 대강당)
9. 2 비전향 장기수 63명 판문점 통해 송환 (오전 10:30경)
9. 18 6차 대표자 회의
- 장기구금양심수의 조건없는 송환을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
- 2001년
1. 10 북측 "조선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2001년 대회"
- 송환되지 못한 비전향 장기수 송환촉구 거론
2. 6 장기구금양심수 전향무효선언 및 송환촉구 기자회견
- 추가송환대상자 33인 명단발표 (명동 가톨릭회관)
4. 30 북으로 귀환하신 이종환선생님 서거
6. 13 북으로 귀환하신 윤용기선생님 서거
7. 26 통일연대 가입
8. 9 토론회 (비전향 장기수 송환과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의미와 과제-성공회 프란시스홀)
8. 15 평양 민족통일대축전 참가
- 귀환 장기수 선생님 건강한 모습으로 반갑게 해후
9. 6 비전향장기수 송환 1주년 기념식(정동 프란치스코회관 206호)
- 2002년
1. 7 북으로 귀환하신 신인영선생님 서거
8. 29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70년대 비전향장기수 옥사사건(최석기,박융서,손윤규) 결과발표
- 위법한 공권력에 의해 전향을 강요받는 과정에서 숨졌다고 밝힘
9. 2 비전향장기수 송환 2주년 기념 및 2차 송환 촉구대회(명동 향린교회)
10. 7 대표자 회의
-사업 점검 및 통일부,적십자사 면담-송환촉구
- 2003년
3.19 2차송환을 기다리던 대구 김태수 선생님 돌아가심
5.28 김경선 선생님- 2차송환을 기다리며 생활하던중 오랜옥고 의 후유증과 폐렴악화로 끝내 기다리는 가족과 고향땅을 밟지 못한채 돌아가심
8.14 평양 8.15민족대회 참가
8.26 통일부 송환촉구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