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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칼럼]파병 거부가 국익이다

입력 : 2003-09-26 01:46:36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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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주권을 가진 독립 국가다. 이라크 전투병 파병은 대한민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파병해야 할 명분이 없는 전쟁이다. 실익은 없고, 위험은 크다. 우리 군대의 주둔비용을 우리가 부담해야 한다. 전후복구 사업의 참여는 불투명한 복구 일정, 이라크의 막대한 외채, 그리고 미국기업들의 독식으로 가능성이 낮다.

 

  파병으로 인해 우리가 직면할 수 있는 위험은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에서 한국은 규모에서 상징성이 크다. 터키는 북부 쿠르드족 문제로 초기부터 파병의지를 갖고 있었고, 파키스탄 역시 지역적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와 다르다. 지금까지 다국적 군의 피해가 거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 달라질 수 있다. 최근 이라크의 테러는 국면별로 중요 타격대상에 집중하는 조직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당분간 미국과 국제사회를 분리시키기 위한 상징적 대상에 테러를 집중할 것이다. 그것이 한국이라면, 비극이다. 우리 기업인들에 대한 테러나, 한국산 제품의 불매운동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파병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파병을 하지 않았을 경우의 불이익을 거론한다. 대부분 근거가 없고 과장된 것이다. 전투병을 파병하지 않는 것이 한-미 동맹관계의 파탄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1차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했고, 현재에도 의료 및 공병부대를 파견하고 있다. 영국을 제외하고, 미국의 어떤 동맹국이 우리처럼 미국의 입장을 오랫동안 일관되게 지지하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동맹국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라크 파병과 핵 문제를 연결하는 논리도 현실 타당성이 없다. 미국의 북한 핵에 대한 입장이 한국정부가 밉다고 강경으로 가고, 곱다고 온건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국익에 따라 전략적 판단을 한다. 파병 거부로 신보수주의자들, 즉 네오 콘들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이 오히려 핵 문제 해결에 유리하다. 최근 들어 미국의 중도파 의원들까지 동맹국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이라크 전쟁을 주도했던 강경파들의 문책을 요구하고 있다.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부시 대통령은 조만간 네오 콘들과 함께 패배의 길을 걸을 것인지, 아니면 네오 콘들과의 차별성을 통해 재선의 가장 중요한 외교적 쟁점을 회피할 것인지를 선택할 것이다. 설마 바보가 아닌 이상, 너무나 확실한 패배의 길을 선택하겠는가 네오 콘들의 입지 축소는 보다 분명해지고 있고, 그것은 북한 핵 문제 해결 환경의 개선을 의미한다.

 

  파병 거부가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의 철수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과장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시장의 안정성을 우선적으로 평가한다. 국방부 담당자가 분명히 아니라고 말했는데도, 주한미군 2사단 철수 가능성을 과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냉전 시대와 달라진 우리의 안보 환경이다. 1971년 국군이 베트남에서 돌아오기도 전인 그때에, 6만여명의 주한 미군 중 2만여명이 우리 정부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철수했던 역사를 새삼스럽게 기억할 필요까지 없을 것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의 수준이다. 대한민국 국군은 지금도 대북 억지력을 갖고 있다. 남북관계는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불신의 강’을 넘어설 만큼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근거도 없이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조장하는 ‘국적이 의심스러운 선동 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

 

  이라크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군대가 아니다. 테러리스트와 이라크 주민들의 관계는 물고기와 물로 비유할 수 있다. 주민들에게 절망의 복수가 아니라 미래의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테러리스트들을 고립시키는 지름길이다. 그 일은 군대가 할 수 없다.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평화봉사단의 파견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요, 수렁에 빠진 미국을 건지는 길이다. 파병 거부는 보다 성숙한 한-미 동맹의 출발이 될 것이다.

 

-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