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구장 목회서신 >
†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성직자 여러분과 교우님들 가운데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민족의 명절인 설날 70여년 만이라는 한파는 참으로 매서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한파마저 무색케 하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해야 했습니다.
지난 1월 28일 0시 40분경 이재정 신부님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수감 되는 불행한 일이 그것입니다. 수감되기 직전 무엇보다 평생을 함께 하며 지켜보아 주었던 교회의 교우들에게 가장 죄송할 따름이라는 마지막 심정을 들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성직자와 교우 여러분 모두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이재정 신부님은 사제이자 학자로서 지난 70-80년대 암울한 시대에 정의와 인권으로 빛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하여 자기 한 몸을 아끼지 않았던 분이기에, 현실 정치에 참여한 것 역시 정권욕이나 재물욕 때문이 아니라 예언자적 소명과 역사와 국가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었기에, 우리는 국회에 사제를 파송 한다는 심정으로 그의 결단을 지지하고 함께 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정치판에서 결국은 이전투구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른 정치인들과는 입문 동기와 배경부터가 달랐던 그리스도교의 사제마저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희생시킬 수 있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주소였던 것입니다.
이재정 신부님께서 목적하신 대로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 생각하고 기대하며 보낸 것입니다만, 이처럼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되어 마음이 너무도 아픕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법적인 문제들은 사법부의 판결에 맡기고, 우리는 기도로써 신부님과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구호만 난무하는 우리 조국의 정치에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만, 무엇보다 낯설고 추운 그곳에서 이재정 신부님께서 건강을 잃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찾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그리고 누구보다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는 신부님의 가족을 위하여 기도하여 주실 것을 부탁합니다.
2004년 1월 29일
대한성공회 관구장 정철범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