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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한국·일본·재일동포 기독청년 공동연수 프로그램 기행문

입력 : 2004-03-02 06:00:52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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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본·재일동포 기독청년 공동연수 프로그램(이하 공동연수 프로그램)은 2000년부터 공동의 경험과 깊은 연대를 이어가기 위해 한일 교회협의회에서 한국과 일본이 같이 준비하는 공동의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해오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번갈아 가며 개최하는 공동연수 프로그램은 올해로 4회째를 맞고 있다. 첫 회는 2000년에 제주에서, 두 번째는 2001년에 일본 큐슈에서, 세 번째는 2003년에 매향리에서, 2004년엔 '더불어 사는 지역공동사회란?'이라는 주제로 가와사키 성바울 성공회에서 숙식을 하며 동경, 가와사키일대에서 2월16일부터 23일까지 7박8일 동안 진행되었다.

 

 한국보다 일찍 찾아온 봄날 같은 날씨로 따듯한 햇살과 담장너머 피어난 매화의 향기가 이국의 서먹함을 덜어주었다. 한국에선 취재를 위해 동행한 기독교방송 기자를 제외한 10명이 참가했다.

  

  현장방문, 발표회, NPO 지원활동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일본내 소외된 자들, 차별받는 소수자들의 삶을 볼 수 있었고, 그 이면의 정치적, 역사적, 사회적, 제도적인 배경을 인식과 그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현장은 사쿠라모토 지역내의 조선학교, 이케까미죠, 후레아이관, 도라지회였고, 수요패트롤이라는 노숙자 지원단체와 공원에서 활동을 벌었다.  그리고, 일본의 민족주의와 우경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야스쿠니 신사, 방위청, 망언을 일삼는 이시하라 지사의 동경도청 등을 방문했다.

 

  사쿠라모토(Sakuramoto, 한인타운)지역의 제1세대 재일동포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했던 이케까미죠, 사회복지법원 세이쿠샤(靑丘社, 이사장 이인하 목사)가 운영하는 후레아이관(만남의 집), 재일동포 1세대를 위한 도라지회, 민족교육을 차별 속에서도 끈질기게 지켜오는 조선학교를 방문하면서 일본 사회의 재일동포들의 과거, 현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지역은 1940년대 일본 정부가 조선인들을 공장지대인 이곳으로 강제이주 시키면서 이케까미죠 마을이 형성되었고 해방된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일본 내 조선인들이 몰려들어 조선인 집단 거주지역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이 거주하고 있는 이곳의 땅 절반 이상이 일본강관 회사와 도꾜 전력의 소유여서 자유롭지 못하다.  후레아이관 관장인 배종도 관장님과 비좁고 정돈되지 않은 마을을 돌면서 1세대 동포들의 삶의 애환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어르신들을 돌보는 도라지회에 걸려있던 할머니, 할아버지님들의 사진들 속에 박혀 있던 깊이 페인 주름을 보면서 어르신들의 인생역정이 전해져 왔다.

 

 아 그 고단한 세월, 살아주셨던 그분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일본 사회 내 동포들의 민족교육을 기치로 차별과 억압 속에서도 꿋꿋이 해왔던 조선학교에도 변화의 조짐이 있었다.  몇 해 전 TV에서도 봤지만 조선학교는 더 이상 총련만의 학교가 아니었다.  동포 63만이 한해 만 명 정도 귀화하는 상황에서 이념만을 앞세워 교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동포라면 민단, 일본으로 귀화한 사람도 다 수용하고 있었다.

 

  실제 방문하면서 그런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교실에 걸려있던 인공기, 김일성 주석, 김정일 장군의 사진은 볼 수 없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교육도 편향되지 않도록 애를 쓰고 있었다.  조선학교에 근무하는 젊은 선생님들과 대화를 하면서, 학생들과 축구와 농구를 하면서, 어떠한 차별에도 굴하지 않고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며 일본 사회에서 조선인으로서 당당히 살아가려는 그들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총련도, 민단도 분단의 희생자들 아닌가. 일본 사회에서 재일동포들이 법적인, 제도적인 지위를 보장받지 못한 것의 출발은 1965년 한일조약으로 볼 수 있다. 한국정부는 재일동포 문제를 내버려둔 채 돈 3억불에 어떠한 보장도 없이 일본정부에 떠넘겨 버렸다.  지금에 이르러 그들을 이렇게 방치한 박정희 정권의 무책임한 역사적 과실을 묻고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려고 한다면 무모한 짓인가. 역사를 올바로 세우지 않고서는 자이니치(재일동포, 재일한국인을 일컫는 말)가 차별받지 않고 당당한 한국인으로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수요패트롤과 함께 했던 노숙자 지원 활동은 일본 내 약자인 그들을 보면서 일본의 약자에 대한 정책을 엿볼 수 있었다. 노숙자에게 돌을 던지고, 시를 비롯해 관공서에서는 육교 밑에서 잠을 잘 수 없도록 담을 치거나, 공원 의자, 건물 옆에서 잘 수 없도록 장애물을 설치하는 등 그 처사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사회라면 어느 사회든 정치적, 경제적으로 소외된 자들이 있다. 정치적 소외자가 재일동포라 한다면 노숙자는 일본에서 경제적으로 소외된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도, 한국에도 있는 노숙자이지만 그네들을 다루는 일본 사회의 대응은 범법자 다루는 듯했다.

 

  이것은 일본의 우경화, 민족주의, 강한 나라를 추구하는 일본의 현 상황과 맞닿아 있다.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A급 전범을 모신 야스쿠니 신사를 아시아 여러 나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참배하는 수상의 모습에서 약자를 지배하려는 강자의 모습을 본다. 이것이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이들이 다시 잘못을 반복할까 두려운 이유다.

 

  필자를 비롯한 참가자들에게 이러한 만남과 배움은 감당키 어려운 일이었다.  과거 무책임한 역사적 행위와 올바른 역사적 인식이 없는데서 기인한 차별과 멸시에서 상호존중과 이해 공생의 길로 나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소외된 이들이 당당하게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기본적 권리를 누리고, 질곡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선 연대가 필요하다. 소외된 이들과의 연대, 그들과 함께하려는 이들의 국경을 초월하는 정의와 양심의 연대, 놓아버린 손을 다시 잡는 연대가 있어야 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 놓아버린 손을 다시 잡는, 정의와 양심의 연대는 이미 우리 안에 있었다.  한일 기독청년간의 교류와 공동연수 프로그램은 그 연대의 출발이며 양국간의 다리 역할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짓는 기초가 될 것이다.

 

  이글을 쓰는 동안 어느 방송사의 심야 스폐셜에서 3.1절 특집 1부로 '자이니치'가 방영되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8일 동안 함께 했던 친구들이 동경YMCA에서 2.8독립선언을 기념하기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이니치와 일본 기독인들이 함께 공연을 하는 모습을 통해 희망을 보았다.  차별을 상호존중과 공생, 화해로 극복해가는 그네들의 모습 안에 하나님나라가 임재하심을 확신한다.

 

* 작성 : 노재화 사회선교국장(한국기독청년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