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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성 목사 KNCC 총무 취임 감사예배 보고

입력 : 2006-12-01 03:16:48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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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KNCC) 신임 총무인 권오성 목사의 '신임 총무 취임 감사예배'가 11월 30일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드려졌다.

신임총무 감사 예배에는 에큐메니칼 인사들과 관계자들 등 200여명이 참석하여 신임총무의 취임을 축하했다.

 

예배순서는 사회는 김기택 감독(KNCC 부회장), 기도는 이삼용 목사(KNCC 부회장), 성경봉독은 서미숙 장로(기장총회 부총회장), 특별찬양은 수도교회 크로마하프 찬양단, 설교는 '희망으로 커 가는 연합운동'이라는 주제로 신경하 목사(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가, 축도는 박경조 주교(대한성공회 주교)가 진행하였다.

 

격려사는 김상근 목사(KNCC 전 부회장), 김순권목사(KNCC 전 회장), 축사는 박상증 목사(참여연대 공동대표)가 격려와 축하의 말을 전했다.

 

 

취임 감사 예배 설교본문

'희망으로 커 가는 연합운동' (눅 13:18-21)

    신경하 목사(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오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취임감사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축원드립니다.

먼저 제55회 총회에서 취임하여 오늘 감사예배를 드리는 권오성 목사님께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권 목사님이 젊어서부터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평화통일, 세계 속에서 선교동역자로서 활동한 일, 특히 현장교회에서 일선 목회자로 수고했던 모든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지금의 NCC를 위해 준비된 총무라고 믿습니다.

바라기는 한국교회가 권 목사님을 추천하고, 선택한 것은 그동안 NCC 80여년 역사를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힘찬 전진의 시대를 열어 가기를 바라는 기대가 담겨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의 발전과 한국 기독교 의 부흥과 성숙 더 나아가 우리 사회와 민족을 위한 새로운 헌신과 열심을 불러일으키는데 불씨가 되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사실 여기에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는 권 목사님께 NCC라는 무거운 짐을 맡겨드린데 대한 부담과 책임도 있습니다. 지난 1990년대 이후 우리는 새로운 시대변화에 긴밀하게 대응하지 못하였고, 건강한 의제를 발굴하여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지도 못하였고, 우리 조직의 재정 능력을 키우지도 못했으며, 교회 간에 협력과 친교를 강화시키지도 못했음을 자성하고 있습니다. 지난 총회에서 발표된 개혁안은 바로 우리 자신의 과거의 유산이며 동시에 미래의 자산입니다.

우리는 NCC의 전통과 정체성을 사랑하며 견지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개혁하는 일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리모델링하는 일에도 주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지닌 두려움의 정체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겨자씨의 불안입니다. 우리는 현재 규모의 논리에 비추어 NCC의 존재를 과소평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NCC의 힘을 물질적 능력으로만 오판하여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소홀히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겨자씨의 불안은 가진 것이 너무 작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물질은 상대적이어서 사람들은 항상 남보다 적게 가진 것을 의식하고, 늘 필요와 쓸모를 호소하게 마련입니다. 현대의 맘몬과 골리앗은 카리스마적인 권력과 독점적인 부의 축적 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는 존재보다는 소유를 지향하는 병든 인간성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다윗은 골리앗의 위세에 눌려 번번히 싸움에서 실패하고 있습니다.

브라질의 돔 헬더 까마라 대주교는 다윗이 쥔 물맷돌을 가르켜 이렇게 비유한 일이 있습니다. 물맷돌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 진리에 대한 확신, 정의에 대한 확신, 선에 대한 확신, 사랑에 대한 확신, 이렇게 다섯 개라는 것입니다. 사실 거대한 골리앗 문화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진리, 정의, 선, 사랑에 대한 메시지들은 별로 먹혀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의 다윗은 골리앗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그것이 겨자씨의 불안의 실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는 인간의 가치기준에 일대혼란을 가져왔습니다. 양과 크기로 볼 때 거의 ‘무’ 에 가까운 겨자씨와 누룩 안에 하늘나라를 잉태하고 있다는 선언은 우리를 향해 물량적인 불안으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한 것입니다. 천국이 겨자씨 안에 담겼다는 말씀은 얼마나 큰 역설입니까?

우리는 겨자씨의 불안을 마치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부족함과 한계 속에서 하늘나라의 둥지를 틀고 계십니다. 비록 겨자씨만한 크기지만 거기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결합될 때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양을 추구하는 생활에서 질을 추구하는 생활로 삶의 방식의 전환을 촉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적은 규모에 흔들리고, 주눅 들어 있지는 않습니까? 불투명한 미래에 근심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닌 겨자씨는 위대한 하나님 나라를 잉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믿음이며,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세계교회 대표적인 연합운동의 상징은 바로 ‘방주’입니다. 사실 방주는 인류 처음교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연합운동의 지향인 ‘오이쿠메네’는 교회야 말로 새로운 세계를 잉태할 오늘의 방주라는 뜻인 것입니다.

이 방주에는 각양각색의 인종과 언어와 문화가 담겨있습니다. 육식동물과 초식동물간의 먹이사슬도 방주 안에서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노아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하는 모습으로, 평화의 항구로 안내할 선장이요, 봉사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방주는 일치와 연합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치와 연합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강화되어야 합니다.

사실 오늘 우리시대에 튼튼한 방주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조선기술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과 같은 양육강식의 법칙에 의해 강자만 존재하는 세계를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이 세상의 도덕과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이 너무 하나님의 뜻과 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오늘 우리시대의 방주를 자처한 교회들은 배구실을 하기 어려울 만큼 낡고 손상되어있습니다. 크게 수리를 하고 개조를 하기 전에는 물에 뜰까도 의심스러운 형편입니다. 사람들에게 안전도에 있어 신뢰를 잃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방주 안에는 밑도 끝도 없는 분쟁과 갈등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구원의 희망은 커녕, 적신호가 켜져 있습니다.

지금 NCC의 문제는 한국 기독교 전체의 문제요, NCC의 존재는 세계교회 전체와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NCC를 개혁하는 일은 우리 내부만을 수리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 외부까지 변화를 완성해 나가는 것이며, NCC가 설계하는 비전은 세계교회 전체의 희망과 공유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다시 한번 이 시대에 어울릴 튼튼한 방주를 함께 만들어 나가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는 새로운 출발과 함께 이미 주신 언약을 갱신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모든 회원교회 그리고 우리 시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모든 이웃들에게 언제나 사랑과 평화를 베푸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총무 취임 격려사

김상근 목사 (KNCC 전 부회장)

 

절더러는 격려의 말을 하라 합니다.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하여 겨우 열흘이 지났을 뿐입니다. 그런데 격려의 말이 왜 필요한 것일까? 이 자리는 축하의 자리인데 정작 축사는 한 분이고 격려사가 둘입니다. 벌써 지친 것일까? 그렇습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지금 권 총무는 산이라도 들어 옮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과 패기에 차 있을 것입니다. 그럴 것입니다. 그래야 합니다.


도저히 동시에 이루어낼 수 없는 두 일을 동시에 추진하는 사람에게 주는 충고가 있습니다. ‘한꺼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지 말라.’ 그렇지요. 그것은 실패를 예약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어느 한 마리도 잡지 못할 것입니다. 도망치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내는 일이란 도대체 불가능한 일입니다.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 하는 것은 분명히 무모한 짓거리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권 총무님, 총무님은 지금 두 마리 토끼 쫓기를 포기해서는 안 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NCC 총무가 하는 일이란 도대체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언젠가는 잡아냈다고 선언하게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언제까지나 현재진행형입니다. 진보와 보수, 개인적 신앙을 추구하는 교회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자는 교회, 큰 교회와 작은 교회, 기득권을 가진 교인들과 민중 교인들, 두 마리 토끼들입니다. 이런저런 사회현안에 교회도 찬반으로 갈리기 마련입니다. 두 마리 토끼입니다. 이 두 토끼 모두와 함께 가는 것이 NCC 총무의 일입니다. 끝내 함께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힘든 일입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해야 합니다.

중도주의의 길을 가자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방향은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낮은 곳이 예수님의 방향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정의, 사랑, 거룩함이라는 말로 그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에게 주파수를 맞춘 색깔, 그 색깔 있는 총무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코드를 맞춘 맛, 그 맛이 있는 총무이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색과 자기 맛과 다른 색, 다른 맛을 포용하고 오히려 조화를 이루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래 그리하면, 한국교회가 어느새 그 색, 그 맛을 내는 한국교회로 방향지어지게 될 것입니다. NCC는 지난 날 이런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내와 끈기가 필요합니다. 총무님, NCC 총무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고달픈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 우리, 여기 모인 우리와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권 총무를 지원할 것입니다. 너무 힘들다 하지 마십시오. 든든하다 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 여기 모인 우리와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권 총무에게 힘을 모아줄 것입니다. 위축되지 마십시오. 자신 있게 나아가십시오.

그럴 때 우리, 여기 모인 우리와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권 총무를 위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내 걸음이 왜소하다 하지 마십시오. 나와 함께 하는 얼마나 많은 신앙의 동지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십시오.

권 총무님, NCC를 한국교회의 희망이 되게 하십시오. 아니, 세상의 희망이 되게 하십시오. 총무님, 한국교회에 다시 꿈을 세우십시오. 아니, 세상에 꿈을 안겨주십시오. 사랑하는 권 총무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르네상스를 이루어내십시오. 우리가 도울 것입니다. 아니, 성령께서 도우시고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