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홍콩 국제협의회 성명서
아시아 지역 생명을 위하여 정의와 평화를 이루는 희망의 씨알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27)
세계교회협의회 국제문제위원회(WCC-CCIA)와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공동주관으로 2013년 6월 3-6일, 홍콩 추엔완에서 열린 국제협의회에 참석한 우리는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시는 예수를 주로 고백하며, 다양한 아시아의 현실을 이해하고 분석하고자 했다. 특별히 인간 안보에 관한 도전들과, 정의와 평화, 인간의 권리와 인간 존엄성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지정학적 경향들에 관해 다루었다.
삼일 동안 우리는 이 거대한 아시아 대륙의 풍부한 전통과 유산을 기리며 동시에 또한 아시아 사람들의 존엄성을 손상시키고 그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오늘의 현실을 애도했다. 아울러 우리는 평화와 안보, 정의에 대한 열정을 이야기함으로써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과 더불어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이 열정은 사랑에 근거한 것으로 인간 존엄성을 확고히 하고, 인권을 보호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세우고자 하는 우리들의 헌신에 힘입은 것이다.
우리는 아시아를 찬양한다.
1. 아시아는 거대한 지역이다 - 거대한 영토에 걸쳐있으며; 다채로운 주민들; 다양한 민족들, 종족들, 토착민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종교; 각기 상이한 정치적 성숙도; 풍부한 경제적 자원; 활기 넘치고 다양한 문화적 표현을 지니고 있다. 아시아는 하나의 단조로운 모습보다는 여러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되어야 한다. 아시아는 천연 자원에 있어서 풍부하다. 곡식을 경작하는 기름진 방대한 땅을 가지고 있다. 아시아의 땅은 지역의 산업과 경제적 발전에 있어서 필요한 모든 종류의 광물자원으로 풍부하다. 식물과 동물군이 다채롭고;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수계로 인해 깨끗한 물과 해양생활을 풍성하게 누리고 있다. 아시아인은 친절한 사람들이다.
2. 우리는 고대문명과 심오한 종교성, 그리고 깊은 영성을 바탕으로 하는 환경 속에서 양육되고 자라났다. 아시아는 지역 내적, 외적 도전을 포함하는 세월의 시련과 세속주의의 도전을 견뎌낸 많은 종교들의 고향이다. 아시아는 아브라함 전통의 세 종교, 즉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탄생지이며 요람이며, 동시에 불교, 힌두교, 유교 및 여러 토착 종교들과 영성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3. 아시아의 에큐메니즘은 공공 영역에서 기독교 증언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왔다. 대화와 협력을 향한 다양한 종교간- 신앙 간의 노력은 매우 고무적인데, 대부분 기독교인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으며, 이는 사회적 신뢰와 화해의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는 이번 홍콩 모임이 이 우주 속에서의 신실한 제자직과 책임감을 보여준 지속 가능한 정의와 평화, 치유와 화해를 다루어온 에큐메니칼 사상과 행동의 오랜 전통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4. 아시아는 혈기왕성한 시민사회를 보여준다. 아시아의 많은 사람들, 운동들, 비정부기구들, 그리고 비판적 사회운동들은 평화를 추구하고, 정의를 구현하며, 인권을 보호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세우며, 적대감을 치유하고, 갈라진 사람들과 민족들을 화해시키는 일에 있어서 시민들과 민중들의 행동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는 아시아를 애도한다.
1. 우리는 과거 역사의 불의뿐만 아니라, 억제되지 않는 자본의 욕망, 옛 시대 제국을 떠올리게 하는 초강대국들의 권력쟁탈에 의한 민족국가의 재조정, 이 지역의 부와 자원에 대한 공격적인 접근을 위해 증가하는 폭력 사용 등 오늘날 아시아의 문제 상황을 직시하고 있다. 세계화는 개발을 위한 공격성을 불러일으켜왔다. 그 일례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는 토착민들과 생태계에 위협적인 지나친 채광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아시아의 국가들은 이주노동자들을 보내는 주요 국가들이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나 그들의 가족들을 위한 적절한 보호는 안타깝게도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아시아 및 세계 다른 지역들의 노동시장에서 값싼 먹이가 되어 왔다
2. 오늘날 아시아의 인간 안보는 여러 가지 요소들에 의해 위협받고 방해를 받고 있다. 수백만 아시아 사람들은 정의와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증가하는 빈곤, 부적절한 건강관리, 경제적 착취, 자연자원의 착취와 환경 황폐화, 약물밀매, 무력 분쟁과 폭력, 군사화, 군비확대, 핵무장, 소총 및 휴대용 병기의 확산, 외부 및 지역 내의 주요 세력의 장악과 간섭, 종족 간 및 종교간 분쟁, 공동체간의 분쟁과 폭력, 정치적 불안, 고문, 구금 중 의문사, 인신매매, 재판 없이 자행되는 사형, 다양한 사람들, 즉 이주 노동자, 무국적자, 노동자나 농부들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위법과 인권침해; 자기결정을 할 합법적 권리에 대한 침해; 법규나 민주적 통치의 부족 등등. 슬프게도 이것이 오늘 아시아 사회를 특징짓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3. 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고질적 전쟁들과 질질 시간을 끄는 분쟁들은 이 지역 안에서 촉발된 것들도 있고, 또한 외부의 군사적, 경제적 세력들에 의해 야기된 것들도 있다. 이러한 전쟁들과 분쟁들은 이 지역을 대 화재와 빈곤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군사화와 심화되는 군비확대는 세계경제위기의 부정적 영향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지역에서 폭넓게 확산되어왔다. 국고가 지나치게 방어비용으로 치우쳐서 정작 사회적 안정망 구축에 쓰이지 못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의 군사비 예산 증액의 새로운 경향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는데, 이는 이 지역에서의 중국의 부상과 그 영향력, 소위 아시아 축이라 불리는 미국의 ”아시아로 회귀” 정책, 점점 늘어나는 경계선 분쟁과 관련국가들 간의 긴장, 등등이 그것이다. 아시아는 무기 경쟁 속으로 치닫고 있음이 분명하다
4. 동북아시아에서의 평화와 안보는 지난 몇 십 년 간 중요한 관심사였다. 정전협정이 맺어진 이후 60년 동안 지역의 긴장이 해소되지 못했던 한반도에서 이는 더욱 분명하다. 1950년에 시작해서 1953년에 끝이 난 한국전쟁은 이 지역에서의 냉전체제를 확고해 했고 오늘날까지 이어져왔다. 한국전쟁을 통해서 5백만 이상의 한국 사람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으며, 천 만 이상이 가족들과 헤어져 이산가족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외국 세력들- 중국, 미국, 러시아-이 이 전쟁을 이끌었다. 일본에 의한 식민 정복은 제국주의적 예속, 대량 학살을 포함한 심각한 인권침해의 발단이 되었고, 이어 미국과 전 소비에트 연방이 한반도를 분할시켰다. 초강대국들이 한반도에 대한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동안 두 개의 다른 체제, 남한과 북한이 서로 간에 끊임없이 대치함으로써 진정한 평화는 점점 더 달성하기 힘들어졌다. 정전체제가 지속되면 될수록, 냉전의 진정한 끝은 없으며,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세계평화는 성취될 수 없다. 평화를 실현시키기 위해 취해야 할 단계들로는 북한에 대한 경제, 금융, 무역 제제들을 중단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꿈으로써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사실상의 전쟁을 끝내는 것이다.
5.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적 공간이 충격적으로 움츠러들고 있으며, 법규와 올바른 통치방식 역시 많이 부족하다. 국가안보란 이름으로 합법적인 반대와 항거가 진압당하고 있다. 소수민족들, 토착민들, 비정부기구들, 정치 야당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고충 표출에 대한 억압은 정치적 다양성을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독립된 사법부를 포함하여 설립허가를 받은 민주적 기관들에 대한 합법화를 부정하는 일이나, 시민사회, NGO 리더들, 교직자들을 포함한 민주 인사들을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일, 구금하거나 죽이는 일 등은 이미 다자간 인권과 올바른 통치체제를 지지해 온 많은 나라들을 포함하고 있는 아시아란 한 지역을 무시하고 있다. 인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 특별히 종교나 신앙의 자유에 대한 침해는 종족의 종교를 축출하고, 종교적 편협성을 키웠다. 테러와의 전쟁을 자유로운 행동이나 시민의 자유를 속박하는 이유로 삼는 것은 특히 심각한 문제다.
6. 아시아에서 민족국가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공격적으로 주장해온 반면, 정치적 과정들에서 시민들이나 시민사회기구들의 참여는 현저하게 위축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민주적 헌법실행은 찾아보기 힘들고 권위주의적 정치 지배가 민주화의 노력을 좌절시키고 있다. 정치적 의지의 틀을 짜는데 있어서 국가통제주의자들의 패러다임은 참여 민주주의가 활성화되는 것을 돕지 않을 것이다. 초강대국들과의 군사동맹이나 자유무역협정은 아시아 국가들을 초강대국의 군사적, 경제적 전략 속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는 아시아의 이익을 증진시키기는커녕 초강대국의 전쟁이나 의제에 말려들게 만드는 것이다.
7. 필리핀, 스리랑카, 미얀마 등등의 나라들에서 서로 다른 민족들이나 적대적인 집단들 사이에 여러 가지 형태, 단계의 평화 대담과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많은 평화 프로세스가 굳건해지고 구체화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과거 굳건했던 협약들이 공동체의 이익은 무시한 채 주로 제국 세력들에 의해 자행되는 터무니없고 편협한 정치적 이해들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8. 아시아는 자원은 풍부하지만, 경제적 불균형과 빈곤에 직면해 있다. 세계화된 생산구조의 이윤은 국제화 시장의 금고를 채우고 있지만 지역사회에 돌아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방위비 예산은 국가 예산의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사회적 안전망, 특히 교육이나 보건을 위해 할당된 예산은 현저하게 낮다. 국가예산에 비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외국으로부터의 채무 때문에 국내 필요를 위한 예산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 전례 없는 부패문화에 더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공적인 자원과 재정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강도질을 용인해 온 것이다.
9. 자연재해나 인간으로 인한 재난들이 여러 아시아 국가들, 특히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태국, 파키스탄, 중국, 일본, 필리핀 같은 나라들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는데, 필리핀은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세계 10위권의 국가가 되었다. 부적절한 임기응변식 조치들이 아시아 국가들을 이러한 재해에 더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무분별한 채광을 비롯한 공격적 개발은 종래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유명한 중국, 일본, 인도, 남한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을 심각한 기후변화의 문제에 직면하게 만들고 있다.
10. 종교적 근본주의와 정치적 극단주의가 아시아에서 부상하고 있다. 분명한 예로, 종교적 차이가 분쟁이나, 폭력적 행동을 떠받치는데 이용되어 왔다. 지배적인 민족국가 패러다임이나 기독교인의 국가안보구축이란 사회적 역할에 지나치게 천착함으로써 기독교인들과 관련 기구들은 사랑, 진리, 정의와 화해가 넘쳐나도록 요구하는 복음에 따라 충실히 살 수 없었다. 그리스도인들이 불의와 폭력의 행위에 공모하고, 자족하고 그것들을 멈추지 않으려 하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을 조각내는 일은 다른 신앙을 가진 우리 이웃들로 하여금 충실한 샬롬의 정신으로 살고자 하는 우리의 진정성에 혼돈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우리의 애도는 세상의 모든 종교들, 사상들이 지향한 목표, 즉 더 정의롭고 온정적인 세상을 만들고, 더욱 친밀하고 밝은 내일을 만들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확고히 하는 것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11. 여성, 어린이, 청년에 대한 학대, 인신매매, 폭력 등은 중지되어야 한다. 아시아 사회의 가부장적 구조는 그와 같은 학대나 폭력을 악화시키는 계급적 관행을 부추기고 있으며, 이는 비판 받아 마땅하며 자유로운 관계들이 구축되어야 한다.
아시아를 위해 우리는 희망한다.
1.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불의를 극복하도록 이끄신다.(에베소서 2장). 우리가 평화와 정의에 헌신하는 것은 샬롬의 도덕적 요구에 대한 겸손한 응답이지, 정치적 필요성이나 경제적 편의에 의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는 시편기자가 읊었듯이 정의와 입 맞추는 그런 평화이다(시편 85편). 하나님께서는 정의가 부재를 불쾌히 여기시며, 만일 공공의 장소에서 가난한 자, 곤궁한 자, 억눌린 자, 소외된 자들 편에 서는 자들이 없다면 노여워하실 것(이사야 59장) 임을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2. 평화와 정의를 갈망하는 기독교인들은 죽음의 행상인이 되거나 제국의 상인이 아닌 평화를 모시는 종이며 정의의 사도여야 한다. 우리는 군사주의, 군사주의화에 저항하여 승리해야 하고, 군사화된 경제를 평화 경제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사회를 군사화하고 우리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약탈하려고 하는 군산복합체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는 우리 미래 세대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미 제국주의적 질서에 대해 승리하셨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한 백성으로 그리스도의 친구로 초대받았으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 즉 그들의 고통과 상처를 예수께서 친히 감당해 주신 자들, 곧 과부와 고아, 멸시당하고 가난한 자, 억눌리고 짓밟힌 자들의 친구들로 초대받은 것이다.
3. 종족과 민족이 다양하다는 것은 우리 각자 안에 내재하는 하나님의 형상, 즉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하나님께 충성할 인간의 권리를 주장하도록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찬양이다. 인권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우리는 아시아 사회에서 가난한 자, 곤궁한 자, 억눌리고 소외된 자를 거론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정의는 희생자들, 도움이 필요한 자들, 상처받은 자들에 관계된 것이다. 그들의 삶에 접근한다는 것 – 연대와 동행으로- 은 기독교인의 제자 됨의 진정한 척도다. 그들과 함께 그리고 모두가 같이 생명의 풍성함을 확고히 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자원, 재능, 선한 의지를 잘 활용하는 진정한 표현이다.
4. 그리스도의 평화는 오늘 여기에 풍성한 생명으로 구체화되고 있다(요한 10:10). 풍성함과 번영은 하나님 창조, 즉 전 우주의 온전함을 유지시키는 생활방식과 정치적, 협력적 실행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약탈이나 점령은 하나님 창조 질서에서는 있을 자리가 없다.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서는 생태적 질서의 건강함이 그 중심에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원과 은총이 넘쳐나는 가운데, 우리는 아시아에서 맘몬으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하는 만족과 나눔의 단순한 삶을 살도록 부름 받았다.
진정한 국가안보란 인권과 인간의 자유와 민중 전체를 그 처음과 중심에 놓는 인간 안보이다. 우리와 우리 이웃이 평화와 조화 가운데 함께 살도록 하는 안보인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 어느 누구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게”(미4:4) 만들 수 있는 안보이다. 여러분이 받은 축복이 희망을 보여주고, 사랑을 퍼뜨리며, 정의를 세우고 생명을 위한 평화를 추구하는 진정한 파트너일 수 있게 하시는 일은 우리 예수께서 하실 수 있는 일 것이다.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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