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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주목하는 시선 2021」- <다시 길에서>” 선정 보도 요청의 건

입력 : 2021-03-12 11:06:10 수정 : 2021-03-12 11: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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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

 

보 도 자 료

교회협 언론 2021- 28호 (2021. 3. 12.)

수 신 : 각 언론사

발 신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

제 목 : “「2월의 주목하는 시선 2021」- <다시 길에서>” 선정 보도 요청의 건

다시 길에서

 

“곧 일곱 번째 사월이 다가오지만,

그 사월은 뭍으로 나오지 못한 채 바다 속에 잠겨있다.

이제 병풍도 앞바다에 침몰한 진실을 인양한 시간이다.”

 

세월호 참사는 자본, 관료, 국가의 총체적 부재

면죄부만 부여한 해경 등 관련자 수사 및 재판

봉인기록물 열람 등 진실 조사, 법 제도 정비해야

이전 정권 탓은 무능과 태만, 책임지는 태도 필요

 

1.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이홍정) 언론위원회(위원장: 권혁률)는 2021년 2월의 시선으로 <다시 길에서>를 선정하여 발표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 일곱 번째 사월이 다가오지만, 그 사월은 아직 뭍으로 나오지 못한 채 바다 속에 잠겨있습니다. 2월의 시선, <다시 길에서> 선정을 통해 병풍도 앞바다에 침몰한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다시금 주목합니다.

 

2. 선정 취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해방을 기다리며, 길을 떠난 사람들

 평생 한반도 평화와 민주주의, 자주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지난 2월15일 숨을 거두기 직전 마지막으로 우리 시대 민중들을 대변하는 세월호 유가족과 김진숙,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을 외면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들은 여전히 언제 다가올지 모를 해방된 내일을 기다리며 길에 서 있다. 김진숙은 자기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일터에서, 김미숙은 죽음으로 내몰려도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어두운 작업장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를 안타까워하며, 세월호 유가족은 죽은 아이들의 억울함을 신원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비록 정치가 정권이 외면할지라도 각자의 해방을 숨죽여 기다리며 길을 나서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2부는 지난 2월15일 김석균 전 청장 등 해경 구조 관련 책임자 9명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김 전 청장 등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때 구조에 필요한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303명이 숨지고 142명이 다치게 한 혐의로 지난해 2월 재판에 넘겨졌지만, 1심은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검경합동수사본부도 현장지휘관이었던 123정장을 제외한 해경지도부는 수사대상으로 보지도 않았다. 2019년 11월 출범한 검찰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은 뒤늦게 해경 지휘부를 수사하고 기소했지만, 해경 구조 관련자들에게 면죄부만 줬다. 곧 일곱 번째 사월이 다가오지만, 그 사월은 뭍으로 나오지 못한 채 바닷속에 잠겨있다. 세월호 유가족은 다시 광장에서 진실의 촛불을 들고, 해방이 올 때까지 길에서 기다려야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바다에 갇힌 나라, 인양되지 않은 진실

 2014년 4월 16일, 인천을 떠나 제주도로 향하던 연안여객선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를 지나다가 8시49분 기울기 시작하여 10시31분 병풍도 앞바다 맹골수도에서 침몰했다. 이 배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학생 338명과 일반 승객, 승무원 등 모두 476명이 타고 있었다. 세월호는 8시49분 처음 기울기 시작했고 YTN에 첫 보도가 나간 건 9시19분이었다. 해경이 처음 도착한 건 9시34분이었고 10시31분에는 배가 완전히 뒤집혔다. MBN은 11시1분7초 “단원고 측 학생 모두 구조”라고 자막을 내보냈고, MBC는 11시1분26초에 “안산단원고 학생 338명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방송속보에 ‘전원구조’라는 자막이 뜨던 그 시점에는 이미 승객들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었지만, 방송에서는 낙관적 보도가 계속되었다.

 

 연합뉴스는 세월호 침몰 8일째인 4월24일자 보도에서 "물살이 평소보다 크게 약한 소조기가 이날로 끝남에 해군과 해군구조대, 소방 잠수요원, 민간 잠수사, 문화재청 해저발굴단 등 구조대원 726명이 동원됐고 함정 261척, 항공기 35대 등의 장비가 집중 투입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사고현장에 투입된 잠수사는 13명이 전부였다. 그 시각 대통령이 잠들어 있는 동안, 관료들은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그러나 언론은 세월호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 구조작업은 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지 따지지 않았다. 권력과 함께 ‘자발적 집행인’이 되어 ‘아름다운 전원 구조’ 신화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의 본질은 낡은 연안여객선이 침몰한 것이고, 이 과정에서 정부는 생명 구조에 실패함으로써, 국가의 무능과 그 무능을 회피하기 위해 본질을 호도하는 은폐였다(박명림, 2015, 11쪽). 2016년 늦가을에서 2017년 봄까지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운 채 촛불을 든 시민들이 요구한 것은 국가는 어떻게 무능했고, 그 무능을 은폐하기 위해 국가는 어떻게 공권력을 오용했는지 그리고 언론은 어떻게 ‘악의 평범성’에 부역했는지 알고자 한 것이다. 이때까지 언론은 권력이 불러주는 내용만 충실하게 받아쓰고, 영상으로 실어 날랐다. 실제로 발생한 사건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언론은 세월호 침몰을 수많은 사고 가운데 하나로 보도했기에 특별히 기억을 위한 증언도 필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세월호도 이전의 무수한 사고처럼 하나로 대형사고로 묻힐 수 있었다. 그러나 사소한 개인의 불행으로 남겨질 수 있었던 사건은 아이를 잃은 부모들에 의해 부활했다. 참사 발생 90일째 되었던 2014년 7월 15일 팽목항에 임시로 차려진 JTBC <뉴스룸>에 아들을 잃은 한 아버지가 불쑥 찾아든다. 그는 누군가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랐다. 그렇게 또 다른 아버지와 어머니에 의해 가족과 아이들의 이야기가 방송을 통해 전달되었다. 방송의 파급력은 컸다. 7월 15일 이전 방송 보도가 침몰하는 세월호와 청해진해운 중심이었다면, 그 이후는 그 배에 탑승했던 사람들과 그들의 남겨진 가족들이 증언하고자 하는 기억과 싸움이었다.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기억을 위한 싸움이 진상 규명과 책임자처벌, 제대로 기억하기를 위한 해방투쟁이 된 것이다.

 

 언론을 통해 세월호 침몰을 지켜봤던 국민은 구조에 실패하는 국가의 무능도 함께 지켜봤다. 그 과정에서 국가가 증발하는 모습까지 지켜봤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능과 부패를 감추기 위해 혐오와 배제를 통해 유가족의 슬픔을 개인적 일탈로 몰아세웠다. 언론은 5월 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전히 힘 있는 권력자로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을 찾았을 때, 울부짖는 가족들의 목소리는 보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체육관에 있던 가족들이 대통령의 ‘구조’ 약속에 손뼉 치는 모습만 보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병풍도 앞바다 맹골수도 속으로 가라앉은 세월호에서 승객들이 탈출하지 못하던 시간에 7시간 동안 대통령 직무에서 사라졌었다. 선출된 권력이 정치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동안, 여느 때처럼 평범한 일상을 위해 집을 나섰던 304명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기억하기와 망각하기

 세월호 사고는 이익과 효율만 찾는 자본주의 시장과 관리기능을 상실한 관료, 책임을 회피하는 정치가 빚어낸 총체적인 사회적 참사였다. 국가가 기능을 상실하고 정치인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이, 관료라는 제도가 ‘망각’이라는 해결책을 관철시키고 있다. 세월호 참사 초기부터 세월호 유가족들은 ‘망각하기’라는 정치적 고립과 긴 싸움을 해 왔다. 정부는 언론을 장악하고, 기업은 신문을 장악하여 편향적인 증언회피와 경험을 망각시키기 위한 편향을 드러냈다. 가장 빠른 해결은 언급하지 않고 망각하는 것이다. 세월호 특조위가 실체적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이제는 잊자’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점점 더 커진다. ‘과거는 청산하고, 미래를 보자’는 주장이다.

 

 우리 사회에서 ‘과거청산’을 주장하며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화해장면을 자주 연출된다. 하지만 이러한 화해는 정치적 수사에 머물 수 있다. 상처 입은 자가 어찌 상처 입힌 자를 복기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겠는가? 용서는 피해자의 권리이지, 가해자의 권리가 아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용서할 때까지 속죄할 수밖에 없다. 설령 피해자가 용서하더라도 기억까지 지울 수는 없다. 그렇기에 과거는 청산할 수 없고, 다만 책임질 뿐이다. 책임소재가 밝혀져야 진실이 규명되고, 어떻게 아픈 기억을 치유하고 기억할 것인가를 고민할 것 아닌가? 아무것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데 어떻게 기록물을 봉인시키고, 화해하자고 말하는가?

 

 세월호 유가족이 요구하는 완전한 진상 규명은 단순한 징벌을 위한 작업이 아니다. 오히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이 땅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한 사건의 재구성이다. 그것이 세월호 특별법의 입법 취지이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는 여전히 미온적이다. 오히려 이제는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했고, 나머지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결론을 지을 수 있도록 맡겨보자는 것이다. 빠른 ‘과거청산’과 마무리 그리고 망각하기가 종착점으로 향하는 여객선처럼 하나의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세월호’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잘못 쌓아온 오래된 기억을 제자리로 되돌릴 수 있는 시작점이다. 미래를 위해 과거와 타협할 순 없다.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

 1966년 10월 21일, 영국 웨일즈의 한 광산마을에서 노천광산이 붕괴하면서, 물에 젖은 석탄 부유물에 파묻혀 144명이 압사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마을 초등학교였다. 다섯명의 교사와 109명의 아이들이 희생되었다. 애버반(Aberfan)사고가 발생했던 첫 주, 갓 집권한 노동당은 오랫동안 붕괴 위험을 무시하고 상황을 오판한 보수당 정권에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50년이 지난 2007년에야 후속처리가 완결된 무능과 태만은 노동당 정권의 귀책이었다. 아이들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던 영국 여왕이 사고 발생 보름이 지나서야 사고현장을 방문한 것은 민중의 고통에 감응하지 못하는 정치를 보여준 사례였다.

 

 1998년 6월 3일, 독일 에쉐데(Eschede)에서 하노버로 가던 초고속열차(ICE) 한 대가 파열한 바퀴가 선로를 이탈하면서, 에쉐데역 근교 교량과 부딪친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승객 101명이 사망하고 88명이 중상을 입었다. 사건이 발생한 뒤 사고수습과 진상규명은 차분하게 이루어졌고, 사고 3년 만에 에쉐데역에 기억공간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책임자에 대한 사법처리와 피해자 보상이 완료되기까지는 5년이 걸렸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독일철도공사에게 귀책을 묻는 법정투쟁이 오래 걸렸다. 그러나 독일 정부와 독일 사회가 사회적 참사를 은폐하지 않고 정의롭게 처리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2021년 4월 16일, 다시 일곱 번째 사월이 돌아온다, 지난 박근혜 정권은 세월호 유가족과 그들의 곁을 지키는 시민들을 거리에서 조롱과 혐오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그 과정에서 박근혜 정권이 주동하고 언론이 ‘자발적 집행인’으로 역할을 했다. 박근혜 정권에서 진행된 세월호 참사 수습과 진실규명 과정은 사건을 은폐하고 망각하기 위한 발버둥에 지나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이 물러난 지 4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 진실은 규명되지 않았다. 그 사이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역할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승계하였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처벌, 희생자와 유가족의 명예회복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아직도 많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건 발생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수집하여 기록함으로써 기억을 통해 희생자와 유족들의 치유를 도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봉인된 기록물을 열람하고,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는 실질적인 조사와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일도 제안해야 한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권만 탓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미래 대안이 무엇인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진실규명과 책임자처벌이 끝나야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 아닌가!

 

 기억은 같은 시간과 공간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사건을 인식하는 틀이다. 이러한 기억은 사회적으로 개개인의 소통을 통해서 공유되고 전승된다. 기억은 그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을 함께 한 사람들의 것이지만, 아픔을 함께 나눈 사람들의 기억은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소멸한다. 경험과 기억이 제도로 정착된 것은 실수와 오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기억은 사건을 증언해 줄 희생자와 남겨진 이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 기억을 제도화된 문화의 기억으로 받아들이게 될 후대에도 발생할 수 있는 참사를 방지할 수 있는 공감 기억으로 전승할 수 있다.

 

 에버반 참사처럼 50년 동안 누군가의 탓을 하며 관료 뒤에 숨어 있을 것인지, 아니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과정과 결과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든지 결정해야 한다. 책임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만 떠넘기고 침묵하는 ‘위험의 외주화’로는 다가오는 일곱 번째 4월에 너무도 부끄러운 촛불 정부가 될 것이다. 이제 선한 기억을 만들기 위해 병풍도 앞바다에 침몰한 진실을 인양한 시간이다.

 

3.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의 ‘<주목하는> 시선’에는 김당 UPI뉴스 대기자, 김덕재 전 KBS PD, 김주언 열린미디어연구소 상임이사,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장해랑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정길화 아주대 겸임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가나다순). 이번 달의 필자는 심영섭 교수입니다.

 

4. 전문은 <첨부>로 보내드립니다. 이번 달 시선 선정 작업이 많이 늦어졌지만 귀 사의 보도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문의 : NCCK 언론위원회 김영주 국장(02-747-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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