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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주목하는 시선 2022」 <이른바 ‘이대남 현상’이 요구하는 대선 메시지>

입력 : 2022-02-14 10:03:29 수정 : 2022-02-14 10: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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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

<이른바 ‘이대남 현상’이 요구하는 대선 메시지>





20대 남성, 일명 ‘이대남’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 중요한 키워드로 부상했다. 양쪽 세력의 경쟁이 팽팽하게 지속될 때 승패를 결정짓는 캐스팅 보트 역할이 그들 손에 쥐어지지 않을까 하는 전망 때문이다. 이들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정서는 한 마디로 ‘당혹’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역동적인 부동층

 

과연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연일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에서 나타나는, 선거를 대하는 20대 남성들의 표심 변화는 가히 역동적이다. 오마이뉴스-리얼미터가 진행하고 있는 ‘매일조사’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지난 해 12월 하순부터 올해 1월 중순까지 약 한 달간 20대 남성들의 변화추세는 드라마틱하다 못해 현란하다. 특히 같은 기간 거의 변화를 보이지 않은 20대 여성들의 지지율과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먼저 변화의 순간들을 짚어보자. 원래 20대 남성은 30% 대 40% 수준으로 윤석열을 지지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난 해 12월 마지막 주에 이재명에 대한 지지율이 40% 가까이 오르면서 윤석열을 20%대로 밀어냈다. 이른바 ‘나라를 구했다’는 삼프로TV의 인터뷰가 공개된 시점이다. 주식과 가상화폐 시장에 관심이 많았던 남성들은 이 영상에 즉각 반응했다. 곧이어 올해 1월 초 ‘탈모 공약’이 나오면서 이재명 캠프는 20대 남성들의 지지세를 굳히는 듯했다.

 

그러나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극적으로 화해한 직후인 1월 7일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 공약이 윤후보의 페이스북 계정에 공개되면서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여기에 이재명 후보가 페미니즘 성향의 유튜브 계정 ‘닷페이스’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겹치면서 지지율은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40%에 달하던 이재명 지지율은 10%대로 떨어졌고, 반대로 윤석열의 지지율은 60% 수준까지 치솟았다. 겨우 일곱 글자에? 겨우 페미니즘 성향 방송에 출연한다는 소식 때문에? 중장년층은 20대 남성들의 너무나도 급작스런 반응에 당황했지만, 20대 남성들은 실제 움직였고, 지금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여론 지형으로 고착화되어 가고 있다.

 

그들만의 소통 메커니즘 : 커뮤니티와 사이버렉카

 

사실 20대 남성이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7%로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오늘날 주목받는 이유는 특정 이슈에 대해 마치 하나의 세력처럼 움직인다는 데 있다. 이들의 존재감이 구체적으로 확인된 시점은 2021년 4월 7일에 열린 재보궐선거였다. 선거가 끝난 직후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20대 남성은 72.5%가 오세훈 후보를 지지했다고 밝혔고, 기성세대가 이 숫자에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런 정치적인 결집이 가능했을까?

 

모든 현상에는 전조가 있다. <급진의 20대>를 쓴 김내훈의 지적대로 오늘날 20대 현상의 첫 번째 전조는 2018년 평창올림픽 당시 일어난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에 대한 반대여론이었다. 미사일 위기를 딛고 극적으로 성사된 남북단일팀이 공정성 문제로 20대 여론의 도마에 오를 줄 기성세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같은 해 여름에는 제주도에 수용된 예멘 난민이 젊은이들의 이슈가 됐고, 2019년에는 조국 법무부 장관 검증 과정이 ‘부모 찬스’라는 이름으로 20대 여론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이런 신호들에도 불구하고 20대가 정치판을 뒤흔들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이듬해 열린 21대 총선에서 여당이 보기 좋게 압승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공정’을 부르짖는 20대의 목소리에 크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선거 직후 ‘인국공 사태’로 불리는 인천공항 보안요원 정규직화 문제에 20대 여론이 들끓을 때도 정부는 언론의 왜곡보도만을 탓했지 이렇다 할 처방을 내놓지 못했던 것이다.

 

그 사이 20대, 그 중에서도 남성들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여론을 결집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극우 커뮤니티로 불리는 ‘일베저장소’를 제외하더라도 ‘에펨코리아’, ‘디시인사이드’ 등의 남초 커뮤니티(남성 유저의 비율이 높은 사이트, 혹은 그런 성향이 강한 사이트)들이 새로운 여론 저수지이자 발전소로 성장했다. 원래 이들 커뮤니티는 스포츠, 게임, 사진 등 다양한 취미 관련 게시판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용자가 불어나면서 다양한 주제의 게시판이 만들어졌고, 현재는 정치 여론까지 만들어내는 종합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커뮤니티가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는 개혁 성향이 강해 좌파 커뮤니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열거한 논란들이 거듭되면서 이들 커뮤니티는 ‘반문재인’ 성향을 강하게 띠게 된다. 특히 페미니즘과 노조, 난민문제 등에 대해서는 극우에 가까운 시각으로 극렬 반대하고 있다.

 

조금 더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들 커뮤니티에서 대부분의 여론은 ‘사이버렉카(Cyber-wrecker)’를 통해 만들어진다. 사이버렉카는 사실 확인이 잘못됐거나 부족한 여러 의혹성 정보를 그럴듯하게 정리하여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든 콘텐츠로 댓글 반응을 촉발할 수 있는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내용이 담기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생산된 커뮤니티 여론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된 공간으로 확산된다. 이 단계에서는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난해 가을 미의회 상원에 페이스북 내부고발자 프랜시스 하우건이 증인으로 출석해 페이스북이 증오와 폭력이 담긴 콘텐츠가 널리 확산되도록 일부러 방치했다고 폭로했다.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는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세계적인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치밀한 알고리즘과 개인화된 인공지능(AI) 기술을 동원해 확증편향을 강화하고 정치적인 양극화를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생산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여론이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을 타고 증폭된 결과가 현재 20대 남성의 여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겨우 일곱 글자 공약에 지지 후보가 뒤집히는 현상 아래에는 어떤 사회적인 하부구조가 형성돼 있을까? 여기에는 20대 세대 전체가 처한 일반적인 상황과 그 중에서도 남성이 겪고 있는 특수한 상황을 모두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일반적인 상황으로 ‘신자유주의 체제의 한계’를 꼽을 수 있다. 더 이상 개발독재 시대의 고도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고, 기술 혁신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구체화 되면서 사회적인 계층 이동과 경제적인 분배 시스템에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인간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워 보이는 기후 변화와 감염병 위기가 겹치고, 미·중간 신냉전 시대까지 도래하면서 미래를 비관하는 정서가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지금의 청년 세대를 표현하는 문구로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는 말이 있다. 전체적으도 가난을 걱정하겠지만, 특히 청년 개인은 계층 하락을 크게 두려워하고 있다. 한 번 미끄러지면 다시는 회생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오늘날 청년세대를 사로잡고 있다.

 

여기에 남성들은 ‘병역'이라는 특수 조건을 하나 더 감수해야 한다. 20개월 안팎이란 시간을 사회에서 격리된 채 보내야 하지만 그에 대한 제도적인 보상은 거의 없다. 남성들이 보기에 여성은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고, 또 ‘할당제’라는 이름의 제도적인 혜택도 받는 것처럼 보인다. 같은 세대의 상대성에 대해 연대감보다 경쟁심리가 먼저 발동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우리 사회에 여성의 유리천장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대기업 취업률은 8대 2로 남성이 압도적이고, 공기업도 6대 4의 비율로 남성이 많이 선택 받는다. 성별 임금격차도 여전하다. 같은 스펙을 가졌을 때 여성이 남성보다 17.6% 적게 받는다. 특히 여성의 경력 단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0대가 되면 경제활동 참가율이 남자 대 여자가 90대 64로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다. 이 세대부터는 여성이 더 이상 남성의 경쟁자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연령대를 낮춰 보면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남녀간 고등교육의 격차는 2000년대 초에 사라졌다. 2008년부터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20대의 경제활동참가율도 2013년부터 여성이 남성을 앞질렀다(노무현재단의 유튜브 프로그램 <알릴레오 북’s> 45회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에서 권김현영 소장의 발언 중). 성별 임금 격차도 20대만 떼어놓고 보면 선진국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20대 남성은 20대 여성보다 가난할 확률이 높다. 특히 남성들이 피할 수 없는 병역 의무는 그 격차를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이게 만든다.

 

<20대 남자>를 쓴 천관율과 정한울은 그들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보수화’가 아니라 ‘억울함’이라고 지적한다. 기성세대는 물론 동년배 여성들과 비교해도 부당하게 차별 받고 있다는 믿음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두 저자는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이라고 이름 지었다. 스스로 소수자라고 여기기 때문에 분노와 혐오의 감정에 쉽게 노출되고 휘둘린다. 김내훈은 이런 정서를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로 해석한다. 만성적인 우울과 불안이 누적되면서 올바르진 않지만 간편하게 자기를 평가 절상할 수 있는 ‘경멸’과 ‘혐오’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다가올 위기와 과감한 개혁

 

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지금 기성사회가 우려하는 이른바 ‘이대남 현상’이 한국만의 특이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보여준 사건인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청년들의 불안이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4월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 중국, 영국, 호주, 노르웨이, 덴마크, 인도, 한국 등 국가에서 35세 이하 청년 1,700명을 대상으로 설문과 인터뷰를 실시해 “밀레니얼 세대가 더 큰 불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계층 이동 사다리가 사라졌다는 위기감을 불안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영국에서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통과된 것도, 다른 유럽 국가에서 극우파들의 발언권이 갈수록 커지는 것도 같은 원인의 다른 증상들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20대 청년들의 움직임이 기성세대 눈에 돌출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기성세대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만큼 절박하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20대 청년들, 그중에서도 남성들의 언행을 마치 탄광 속 카나리아처럼 미래사회에 닥칠 위기를 미리 알리는 일종의 ‘전조(前兆)’라고 해석하면 어떨까. 어떤 면에서 몸부림일 수도, 아우성일 수도 있는 그들의 움직임을 진지하게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내훈은 20대가 “정치적 상상력이 협소한 탓에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어떤 변화를 지향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새로운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들의 상상력으로 그 새로움이란 정권 교체 정도에 머문다”고 평가했다. 그가 말한 정치적 상상력이란, 궁극적으로 바꾸고 싶은 우리 사회의 미래상과 비슷한 말인데, 지금의 20대는 신자유주의가 보편화된 세상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다른 사회체제가 가능하다는 상상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불가에 “손가락을 보지 말고 아니라 달을 보라”는 말이 있다. 이른바 이대남 현상은 현재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기성세대는 아직 눈치 채지 못한 심각한 문제를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은 한계에 봉착한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순과 문제들 아닐까? 그들이 ‘정권 교체’ 구호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현상 유지를 전제로 한 온건한 변화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메시지 아닐까?

 

지금의 이대남은 불과 5년 전에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섰고, 선거에서도 문재인과 심상정 등 개혁세력에게 평균 수준의 표(47%, 선거일 직전 한국갤럽이 조사한 예상 득표율 결과임)를 던졌던 사람들이다. 게다가 이대남은 성평등 분야에선 다른 어느 세대와 성별보다 진보적인 태도를 취한다. 최종숙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상임연구원이 2020년 3월 발표한 논문 ‘20대 남성 현상 다시 보기: 20대와 3040세대의 이념성향과 젠더의식’을 보면, 20대 남성의 성평등 의식이 20대 여성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남성의 육아를 수용한다’, ‘여성의 주도’와 같은 항목에서 20대 남성은 20대 여성보단 점수가 낮았지만, 30대 여성보단 높거나 비슷한 수용도를 보였다.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20대 남녀 모두 진보적이라는 중앙일보 조사 결과도 있었다.

 

물론 이대남을 비롯한 젊은 세대의 우경화 현상은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간은 물론이고 미국과 중국이 맞부딪히는 한반도에서 정치지향이 우경화되는 것은 어렵게 쌓아올린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대남 현상이 던지는 메시지에 대해 정치권과 기성세대는 능동적으로 신속하게 응답할 필요가 있다. 불안과 억울함의 정서에서 비롯된 우경화 움직임이 구체적인 세력으로 굳어지기 전에 흔들리는 정체성을 붙잡아줄 수 있는 밧줄을 던져줘야 한다. 아울러 새로운 사회를 향한 정치적 가능성을 열어줌으로써 분노의 에너지를 변화의 에너지로 전환시켜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 선거는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도 큰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회다. 기후 위기와 팬데믹 상황, 미중 대결 양상도 기존 관념을 뛰어넘는, 기득권 혁파까지 포함하는 과감한 개혁을 가능케 할 지렛대가 될 수 있다. 물론 개혁의 도전은 언제나 위험을 동반한다. 역행 또는 퇴행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오늘날 이대남 현상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앞으로 나갈 것을 호소하고 있다.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의 ‘<주목하는> 시선’에는 김당 UPI뉴스 부사장, 김태훈 지역스토리텔링 연구소장,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장해랑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정희상 시사IN 선임기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가나다순). 이번 달의 필자는 김태훈 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