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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파병 철회를 위한 성공회대 교수 성명서

입력 : 2004-07-01 10:31:12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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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파병 철회를 위한 성공회대 교수 성명서

 

불굴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파병 강행을?

2004년 6월은 한국민에게는 참혹한 충격의 달이었다.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된 고 김선일 씨가 끝내 살해된 채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에게 분노의 화살을 보내야 정당한 것인가 하는 물음을 갖게 된다. 일부 국민들은 무고한 양민의 목숨을 볼모로 하는 이라크 무장단체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대한민국의 ‘불굴(不屈)’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파병을 더욱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아무리 미국에 대한 ‘항전’이라고 하더라도 테러행위에 대해 항변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미국이 잘못 저질러 놓은 ‘증오의 전쟁’에 우리가 잘못 휘말려 들어간 것인데, 오히려 더 강력하게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감정적인 반응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최근의 이러한 경향에 대해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라크 파병을 즉각 철회하여야

이런 점에서 우리는 당연히 이라크 파병반대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오늘도 광화문에 서서 추가파병을 ‘줏대도 없이’ 밀어 붙이고 있는 참여정부를 비판하면서 추가파병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의 직접적인 책임은, 미국의 추가 파병 요구를 뿌리치지 못한 노무현 정권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즉각적으로 이라크 추가파병을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아무리 이라크 재건을 위한 파병이라고 강변한다 하더라도,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처사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일개 테러집단의 테러 때문에 파병을 철회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국가적 체면을 손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파병철회는 부시행정부가 잘못 저지른 전쟁에 잘못 참여한 일에 대해서 뒤늦게라도 방향전환을 하는 ‘현명한 결단’이지 결코 체면 손상의 일은 아니다. 국민들은 노무현 정부에 대하여 이전의 정부에 비해 보다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대미관계를 소망해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이런 소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취임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이러한 자신의 지지자들의 소망을 일관되게 거부하였다. 취임 이후 미국 방문에서도 ‘수용소 발언’을 해서 국민들을 경악시킨 바 있다. 참여정부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 이라크파병 문제는 미국에 양보해야 한다고 강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 6자 회담에서 미국행정부가 보이고 있는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외교적 정책은 이라크전에 대한 잘못된 개입으로 인한 국민적 지지를 상쇄해보려는 제스처라고 생각한다. 이라크에서 이라크 민중의 항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이 자신의 지지도는 추락하고 여기에 북핵문제에서도 호전적 군사주의를 노골화한다면 더큰 지지의 추락을 염려한 나머지 유화적이고 외교적인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북핵에 대한 공격적 정책에 비해 유화적이고 외교적인 정책은 긍정적인 태도변화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것이 참여정부가 이라크에 파병함으로써 나타나는 태도변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도 북핵문제를 명분으로 이라크 추가파병을 정당화하려 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파병의 철회라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시와 네오콘에 대한 국제적 퇴출운동을

이라크 파병을 강행하려는 참여정부에 대해서 분노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분노를 더욱 올바른 방향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라크 저항단체들로 하여금 김선일 씨 살해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한 실체, 또한 한국정부에 대해서 추가파병을 선택하도록 강제한 실체, 그리고 이러한 증오의 전쟁을 유발시킨 실체에 대해서 말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구실로 이라크 침공을 자행하고 이라크 국민들을 끝없는 항전과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부시와 네오콘세력에게 분노의 화살이 향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라크 침공을 통해서 증오와 대립, 살상이라고 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 바로 부시와 네오콘세력이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 군대만 이라크에 파병하지 말자고 하는 시각을 벗어나서--그것도 물론 중요하지만--이라크 침공 자체를 우리 의제로 끌어안고 실질적이지 않은 이라크 주권이양 반대 등 국제적인 반전평화운동에 동참하여야 한다. 부시와 네오콘 세력이 퇴출되지 않는다면, 김선일 씨와 같은 무고한 죽음들이 계속될 것이다. 이라크 민중들은 왜곡된 대립의 구도 속에서 눈물의 계곡을 헤어 나올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취지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우리의 요구를 밝히고자 한다.

  1. 국가가 방치하여 억울하고 처참한 죽음을 당한 김선일 씨를 추모하며, 이제 제2, 제3의 김선일 씨 사건을 유발할 수 있으며, 미국 부시 정권이 감행한 명분없는 전쟁에 줏대 없이 휘말릴 수 있는 이라크 추가파병을 즉각 철회하여야 한다.
  2. 김선일 씨 죽음을 계기로 맹목적 애국주의를 부추기면서 추가파병을 요구하는 일각의 잘못된 시각과 주장은 비판받아야 하며, 국민들은 냉정하고 이성적인 시각에서 파병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3. 정당성이 없는 이라크침공을 감행하고 전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부시와 네오콘세력을 단죄하기 위한 ‘국제적 퇴출운동’에 나서야 한다.

2004.6.30.

성공회대 교수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