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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보안법 폐지를 위한 한국 기독교 신학자들의 성명서

입력 : 2004-10-21 11:42:28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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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이하 국보법) 철폐를 놓고 우리 사회는 양분되어 있다. 국가보안법은 1950년대 전쟁과 냉전의 시대의 산물이다. 국보법의 제정 목적은 그야말로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동안 그 시행과정에서 국민의 인권 침해, 사상의 자유에 대한 침해 등으로 문제점을 많이 드러내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국보법에 의해 사상범으로 낙인찍혔고, 사형, 고문, 투옥에 시달렸다. 이제 남북이 평화공존하고 결국 통일의 길로 분명하게 나아가고 있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여 낡은 법적 테두리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현재 형법상 간첩죄에 관한 법, 내란죄에 관한 법, 군사기밀 보호법 등이 있어서 국가 안보를 위한 법적인 장치는 이미 잘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 화해의 역사적 흐름에 맞지 않고, 남용의 소지가 분명하게 있는 국보법을 존속시킨다는 것은 오늘의 현실에 결코 맞지 않는다고 판단된다.

 

우리는 다음 몇 가지의 이유를 들어 국보법을 전면 폐지할 것을 주장한다.

 

첫째, 국보법은 국민들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점에서 폐지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는 모든 사람들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가질 수 있으며 국가는 이를 보호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상에 대한 견해가 일정하게 타당성을 가질 수 있고, 또 상대성을 가지므로 어떠한 견해도 피력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국보법이 이러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악법이라고 판단한다.

 

둘째, 국보법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권을 억압하여 왔다. 국보법은 국가적인 폭력의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국보법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 등에 의해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당하고 감옥에서 고생하였다. 이러한 일들은 남북 분단의 비극적인 산물이며,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나 법에 의해서 하느님이 주신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잘못된 일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남북분단을 빙자하여 더 이상 인간의 존엄한 생명을 억압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국보법 폐지는 인권의 신장과 직결된다.

 

셋째, 국보법은 남북의 화해, 평화, 그리고 통일의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 이미 남북한의 영수회담이 있었고, 지금도 남북한이 수많은 왕래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북한 정부와 북한 주민들을 민족의 미래를 함께 열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의 동반자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 계속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품고 있는 이상, 평화와 통일은 가능하지 않다. 국보법의 존속은 이러한 적대감을 제도적으로 부추기는 것이 된다. 국보법은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하고 있어 이러한 민족의 평화와 통일의 앞길을 가로 막는 방해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우리 기독교 신학자들은 국보법의 완전 철폐를 주장하며, 이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할 것이다. 이를 가로 막는 보수 근본주의 세력과 한나라당은 국보법 철폐에 참여함으로써 낡은 냉전 시대의 유물을 벗어던지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거룩한 노력에 나서 줄 것을 촉구한다.    

 

2004년 10월 21일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기독교 신학자 일동

 

김경재(한신대), 김창락(한신대), 임태수(호서대), 권진관(성공회대), 김용복(전 한일장신대 총장), 이경숙(이화여대), 이찬수(강남대), 송순재(감신대), 정원범(대전신대), 박호용(대전신대), 허호익(대전신대), 손규태(성공회대), 최영실(성공회대), 이정구(성공회대), 김기석(성공회대), 이정희(성공회대), 강원돈(성공회대), 이석규(성공회대), 최만자(새길교회), 위형윤(안양대), 양명수(이화여대), 박경미(이화여대), 이정배(감신대), 채수일(한신대), 노정선(연세대), 박명철(연세대), 정재현(연세대), 정종훈(연세대), 한인철(연세대), 임헌준(예은교회), 정경호(영남신대), 박동현(장신대), 최형묵(천안살림교회), 김용복(침신대), 우택주(침신대), 김애영(한신대), 강주민(한신대), 임희숙(한신대), 김상일(한신대), 이남섭(한일장신대), 박재순(한신대), 장윤재(이화여대), 한인철(연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