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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세진 열사 21주기 추모예배ⓒ 장익성/에큐메니안 |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치며 1986년 4월28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4거리 가양쇼핑센터 앞에서 분신한 고 김세진 열사를 추모하기 위한 추모예배가 5월5일 판교공원묘지에서 개최됐다.
서울제일교회와 한국기독교청년협의회 그리고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이 주관하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가 후원하는 추모예배는 고인이 판교 공원묘지에 묻히고 21년간 계속되고 있다.
이 날 예배는 한국기독청년협의회 이정원 회장의 사회로 고인을 기리는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의 특송과 김동완 목사의 설교와 KNCC 권오성 총무의 추모사로 진행됐다.
김동완 목사는 “20년이 지났지만 양키고홈을 외치며, 우리에게 미국이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대답한 김세진 열사를 오늘 우리는 기억한다”며 “그가 남긴 예수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우린 항상 기억하며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되살리길 바란다”고 전했다.
고 김세진 열사는 1986년 당시 서울대학교 자연대 학생회장이었으며, 같은 해 4월 28일 아침 서울 관악구 신림동 4거리 가야쇼핑센터 앞에서 서울대 총학생회 주관으로 열린 전방입소 반대시위 도중 분신했다.
김 열사는 400여명의 서울대 2학년 학생들이 "반전반핵 양키고홈"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를 외치며 가두투쟁을 전개하던 중, 반전반핵 투쟁위원장 이재호 열사와 함께 예식장 옆 3층 건물 옥상에서 온몸에 신나를 뿌리며 강제진압하려는 폭력경찰에 경고했으나, 이를 무시한 폭력경찰의 강제진압 도중, 두 사람이 분신했다. 이재호 열사는 전신 80%이상의 3도 화상을 입었으며, 김세진 열사는 전신 60%의 3도 화상을 입었다.
이 투쟁을 계기로 반미운동이 급속히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한국의 운동사에 일대 전기를 이룬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