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CC

팔-e뉴스 16호) <고향>, 팔레스타인에서 온 강렬한 예술

입력 : 2020-02-28 15:31:08 수정 : 2020-02-28 16:09:49

인쇄


<고향>, 팔레스타인에서 온 강렬한 예술



Susannah Stubbs
미국장로교 청년자원봉사단(PCUSA-Young Adult Volunteer)



‘고향’ 은 ‘비서구권’으로 여겨지며 예술계에서 종종 잘 표현되지 않고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한 다양한 지역의 예술을 다루기 위해 서울시립미술관이 기획한 전시입니다. 중동의 예술에 초점을 맞춘 이번 전시에는 팔레스타인 출신 예술가들의 작품이 많이 전시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에 대해 잘 모르지만 더 알고 싶은 사람으로서, 특별히 예술가들의 눈을 통해 그곳의 상황을 배울 수 있게 되어 설렜습니다. 또한, 이 문제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시각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저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대화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토요일 광화문에서 저는 한국과 미국의 국기를 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있기도 했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광화문은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광화문과 미술관에서 경험하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느낌은 매우 다릅니다. ‘고향’ 전시의 일부로 소개된 팔레스타인 예술은 방문객들에게 팔레스타인 상황을 알리는 것 그 이상을 제공합니다. 사진, 그림, 조각, 멀티미디어 그리고 행위미술 등으로 잘 구성된 이 전시는 공감을 외치고 있고, 상실과 장소에 대한 복잡성을 반영하며 창조적인 회복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점령’에 대해 기록하기 (사진: 황보현 목사)

 

‘점령’이란 제목의 아람 시블리(Ahlam Shibli) 사진들은 이스라엘이 통제하는 도시 알-칼릴(Al-Khalil)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도로와 집, 편의점 사진들을 보면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이 정상적인 느낌은 철조망, 감시탑, 이스라엘인들이 남긴 복수 표시들을 보면서 점점 고통스럽게 변합니다. 이런 광경들은 알-칼릴에서 매우 평범하게 존재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과 이웃들 사이에 장벽을 쌓음으로써 점령자들에 대한 감정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점점 더 많은 공간을 빼앗기며 조용히 좌절하고 있습니다. 평범하게 일어나는 상황이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침입자를 막기 위해 콘크리트와 파편으로 가득찬 통들
Occupation,
Ahlam Shibli.‘점령’, 아람 시블리. 출처: ahlamshibli.com

 

 

이 사진들을 지나 압둘 헤이 모살람 자라라(Abdul Hay Mosallam Zarara)의 화려한 조각들과 술레이만 만수르(Suleiman Mansour)의 그림들을 보며, 팔레스타인 상황에 대한 나의 무거운 감정은 경외감과 존경심을 포함한 감정으로 변했습니다. 아름답고 생생한 표현의 그림들과 조각품들 중에는 여성을 중심으로 한 작품이 많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평범하게 삶을 살아가고 일하며 공동체에서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만수르의 그림은 더 초현실적입니다. 한 그림은 거대한 여성이 앉아 있는 것을 보여주는데, 그녀의 주위에는 마을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고 그녀의 다리 사이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어 나옵니다. 이것은 유산과 힘에 대한 강력한 표현입니다. 이 예술가들에 대해 살펴보며, 팔레스타인 문화에 존재하는 수무드(sumud)라는 개념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수무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시민 불복종운동을 행하는 이들을 지지하기 위해 사용해온 개념으로 한결 같은 인내를 말합니다. 이 작품에서 본 것이 바로 그 수무드입니다.

 

The Village Awakens, Suleiman Mansour. ‘깨어난 마을’, 술래이만 만수르. 출처: paljourneys.org

  

 

주마나 에밀 압보드(Jumana Emil Abboud)의 작품들에는 보다 추상적이고 환상적인 표현이 담겨 있습니다. 그녀는 팔레스타인 동화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 전시회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들 중 하나는 "살과 뼈의 산 풍경"(Flesh and Bone Mountain Landscape)이라는 그녀의 그림이었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 은은하게 칠해진 분홍색 바탕으로 뼈들이 흩어져있는 갈색 언덕 앞에 단순하게 그려진 한 여자가 서 있습니다. 여자에게는 손이 없습니다. 이것은 바꿀 수 없는 상실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기억함으로써 생긴 무력함을 표현하는 듯 합니다. 그것은 조용히 애절하면서도 동시에 엉뚱합니다.

 

팔레스타인 동화 '손이 없는여자'(The Handless Maiden)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
“Flesh and Bone Mountain Landscape”, Jumana Emil Abboud.
"살과 뼈의 산 풍경”, 주마나 에밀 압보드. 출처: Ibraaz.org

 


 

전시된 또 다른 작품은 얼룩진 흰 옷들이 걸린 선반과 더러워진 큰 방수포였습니다. 영상에는 같은 옷을 입은 갈색 진흙으로 덮인 사람들이 방수포 위에 줄을 서서 옷이 거의 다 깨끗해질 때까지 센 물줄기로 씻기고 있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의 목적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종차별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를 부채질하는 순수와 정화라는 개념을 비판하는 것이었습니다.

출처: sema.seoul.go.kr

 

아람 시블리의 또 다른 작품인 ‘동부 LGBT’ 사진 컬렉션도 보았습니다. 이 사진들은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중동 여러 지역의 동성애자들과 트랜스젠더들, 그리고 그들이 사는 환경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들이 입는 옷이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 등을 담고 있습니다. 이 사진들은 사적인 장면이지만 존경스러웠고, 또 화려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진들은 어려움에 직면하여 온전하고도 아름답게 살아가는 한결 같은 인내인 수무드의 또 다른 표현으로 느껴졌습니다.

Eastern LGBT, Ahlam Shibli.
“동부 LBGT”,  아람 시블리. 출처: ahlamshibli.com

 

 

 

‘고향’ 전의 주제 중 하나는 "침묵의 역할을 다하는 작품" 이었습니다. 이 전시를 통해 저는 상실감과 특별한 종류의 침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마치 나무에 매달린 마지막 꽃의 침묵과도 같이, 큰 어려움을 겪으며 지켜내고 있는 아름다운 어떤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전보다 열린, 그리고 조금 더 부드러워진 마음을 안고 전시장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더 절박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이 전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 궁금해졌습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점령 측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전시는 실제 그곳 사람들의 관점으로 상황을 보게 되는 도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민족이나 종교 또는 정치지형의 어느 측에 있든 상관 없이 모든 사람에게는 고향이 있습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전 세계 많은 이들이 자연재해나 점령, 전쟁, 민족분단 등으로 잃어버린 고향을 깊이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고향’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3월 8일까지(무료입장) 열립니다. 이 전시를 통해 중동, 특히 팔레스타인에서 온 이 강렬한 예술을 경험해보기를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