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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빛) 전쟁, 평화, 그리고 우리의 미래 - 정인철

입력 : 2023-03-20 14:10:39 수정 : 2023-03-20 14: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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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화해통일위원회
 
 




<평화의 빛> 한반도와 함께 연대하는 세계교회 자료집 다시 읽기 


🧐 평화의 빛 두 번째 출판물인 이 소책자는 2020년 WCC 회원교회에 70년간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한반도 갈등에 대해 알리는 자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 소책자는 한반도 여정에서 각자의 경험이나 전문지식을 가진 많은 기고자들의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쟁, 평화, 그리고 우리의 미래 - 정인철] 


나를 구해주고 전사한 헨리 대위를 밀치고 후퇴를 거듭

저는 20대 초반의 나이로 6.25에 참전하였고 충북 옥천 지역 미 1기병사단의 수색 중대 2소개 1분대에 편입되었습니다. 각 소대에 60mm 박격포 1문, 각분대에 경기관총 1문식이 배정되었습니다. 저는 무기 사용법을 몰라 미군 헨리 대위로부터 실탄장전 및 사격요령을 교육받았습니다. 충북 옥천에서는 전투가 없었고, 충복 영동 황간, 서산, 구미에서 간헐적 전투가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왜관까지 후퇴를 했습니다.

왜관 북쪽 303고지에 인민군 1개 사단이 계곡마다 잠복해 있다고 했고, 우리 수색중대가 고지정상을 점령하면 미 기병사단이 밑에서 올라가서 인민군을 전멸시킨다는 작전을 계획했습니다. 1950년 8월 16일 오후 5시경 우리는 일주일 분의 식량과 물, 실탄을 가지고 포복으로 산을 기어 올라가 새벽 4시경 303고지의 약 50m까지 접근했습니다. 하지만 고지에는 적이 이미 포진해 있어서 우리는 적에게 완전히 포위되었습니다.

1개 중대 병력으로 고지를 뺏고 빼앗기기를 반복하며 우리는 일주일 분의 실탄을 모두 소진하였습니다. 결국 북한군과 백병전이 벌어졌고 우리는 역부족으로 산 아래 급히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가파른 꼐곡에 떨어지게 되었고 마침 헨리 대위가 손을 내밀어 저를 구했지만 불행히도 헨리 대위는 저격병의 총에 맞아 즉사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그를 업고 후퇴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한 죄책감과 비참함을 한 평생 아픈 기억으로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8월 17일, 저는 저를 자신의 생명으로 구해주었던 헨리 대위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전쟁의 참상과 교훈

우리는 3년 1개월 간의 6.25 전쟁으로 약 3백만 명에 달하는 인명손실과 막대한 재산상의 손해를 입었습니다. 나약하기 그지없던 대한민국은 전쟁이라는 회오리바람 앞에서 금방이라도 꺼져 버릴 듯 가냘픈 모습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모두가 부모, 형제를 두고 자신의 입신에 대한 꿈들을 접고 참전해야 했습니다. 하나뿐인 자신의 몸과 생명을 바쳐서 적의 총탄에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제가 서술한 전쟁의 한 단편은 저보다 더 끔찍한 기억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도 저는 전쟁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게 살 수 없었습니다. 제가 겪은 전쟁의 참상과 현실은 실로 끔찍했습니다. 매일매일 벌어지는 전투에서 총알받이로 전사하는 전우들의 시체를 방패 삼아 목숨을 연명하는 일상이 그야말로 지옥과 같았습니다. 저 건너편 내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적군 또한 나와 같이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전장에 내몰린 그저 하나의 생명이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도 나 또한 총부리를 겨눌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적군의 총을 맞은 나의 전우이자 은인인 헨리 대위를 전장에 버려두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념 수호를 위한 전쟁, 힘의 논리를 펴기 위한 전쟁? 신이 주신 선물과 같은 생명을 인위적,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전쟁은 그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힘을 길러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쟁의 참상을 최전선에서 겪어본 저에게 이러한 말은 그야말로 실상을 모르는 자의 헛소리에 그치지 않습니다. 무력으로 평화를 지킨다는 것은 또 다른 무력의 충돌을 양산할 뿐입니다.

진정한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유혈사태로 분쟁을 해결하려던 역사의 과오를 바로 알아 배우고,
이렇게 어리석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다음 세대에게 지난 과오를 가르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신채호 선생의 글귀를 적고 싶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손들에게 뼈아픈 과거의 역사를 가르치고 보다 평화로운 미래를 건설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정인철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 제 1기병사단에서 복무했던 참전군인이다. 


- 한반도종전평화캠페인 서명: https://endthekoreanwar.net/
- 화해통일위원회 홈페이지: http://www.kncc.or.kr/newsList/knc003000000
- <평화의 빛> 영문 버전 English Version : https://www.oikoumene.org/./publicat./the-light-of-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