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 장애인주일연합예배 공동설교문
- 2007 KNCC 장애인주일 공동설교문
본문 : 누가복음 5장 17~26절/ 제목 : ‘그들의 믿음’/ 찬송 : 373, 278장
2006년 9월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등록 장애인 수는 총 1,934,515명이었습니다. 6개월이 지난 지금은 분명히 더 늘었을 것입니다. 미등록 장애인들과 법정 장애외의 현실적인 장애인들을 고려하면, 그 수는 상당히 늘어났을 것입니다. 이러한 수치는 서너 집 건너 한 가정씩 장애인을 가족구성원으로 두고 있는 현실에서, 언제든지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보면, 우리 모두가 예비 장애인이며, 장애인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도 만연한 장애에 대한 비하와 소외의 환경 속에서 기독교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사랑으로 장애인들과 함께 해왔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어떤 사람이든지 그가 가지고 있는 재물이나 학식, 권력이나 지위가 아닌, 사람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겼고,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이 땅에 현존하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5장 17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은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을 상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는데, 때 마침 한 뇌병변장애인을 네 명이 침상에 메어가지고 예수님에게 나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집에 모여 들었기에 그들은 감히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고, 그래서 그들은 기발하고 도전적인 생각으로 지붕에 올라 가 기와를 벗겨내고 뇌병변장애인을 침상 채로 예수님께로 달아 내렸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저희 믿음)을 보시고 뇌병변장애인의 죄를 사하시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본문에서 중요한 구절 중 하나며 함께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20절의 ‘그들의 믿음’입니다. 이 장면은 네 사람이 침상에 누운 뇌병변장애인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데 당시 고대 이스라엘의 건축적인 장벽과 함께, 많은 무리로 인한 물리적 장벽으로 큰 어려움에 놓여 있는 상황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무리들의 열심이 분명히 귀한 것일 수 있는데, 본문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많은 무리들은 네 사람이 뇌병변장애인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하는 데 결정적 장벽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특히 누가복음서에서 저들은 ‘갈릴리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오늘 우리는 교회공동체에서 장애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데 건축적인 장벽과 함께 사람들이, 곧 교인들이 장벽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본문의 ‘그들의 믿음’은 헬라어로 ‘텐 피스틴 아우톤’(τὴν πίστιν αὐτῶν)으로 3인칭 복수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네 사람의 믿음이 예수님께서 뇌병변장애인을 죄사하시고 치유하는데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만연한 장애이데올로기 중 하나는 장애인은 오직 장애인 자신의 믿음으로 치유 받을 수 있고 치유 받아야 한다는 믿음과 치유의 장애이데올로기입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많은 장애인들을 치유해 주시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치유기사의 대부분은 사실 사람들의 믿음, 그것이 병자나 장애인 당사자건 아니면 주위의 어떤 사람의 믿음이건, 사람들의 믿음과 관계없이 전적으로 예수님이 병자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본문 17절 하반에도 보면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고 하여, 어떤 인간적인 계기보다도 전적으로 메시아적 능력에 기초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에는 부분적으로 병자나 장애인 당사자의 믿음이 치유의 주요한 요소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고, 또한 주위 다른 사람의 믿음이 치유의 중요한 요소로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서만 보더라도 8장 48절에는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 가를 만졌을 때에 예수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7장 19절에서는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에 거하던 열 명의 한센병자를 고쳐주시자 그 중의 오직 한 사람, 곧 사마리아인만 돌아와 사례하자 그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8장 42절에는 여리고의 한 시각장애인을 고쳐주시고 예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가하면, 누가복음의 오늘 본문과 함께 7장 9절에서는 가버나움의 한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하인을 고쳐 주셨습니다. 8장 40~42절과 49~56절에서는 아버지 야이로의 믿음이 그의 딸을 다시 살리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대부분 누군가의 믿음 없이 치유하셨지만, 때로 사람의 믿음을 근거로 치유하실 때는 병자나 장애인 당사자의 믿음에 근거할 때도 있었고, 주위 사람의 믿음에 기초할 때도 있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 은연중에 만연되어 많은 상처를 일으키고 있는 믿음과 치유의 장애이데올로기는 이러한 여러 경우나 예외를 무시한 채 우리의 생각을 오직 하나, 곧 장애인 자신의 믿음으로만 치유 받는다는 생각으로 고착화시켜, 그 외의 것들을 인정하지 않고, 당사자를 정죄해 버리는 것입니다.
신학자 낸시 레인(Nancy J. Lane)은 이것을 ‘희생양 신학’(victim theology)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치유 받지 못한 사람의 잘못을 그 사람의 믿음의 부족으로 돌린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어떤 병자나 장애인이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는데, 그가 시간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고 할 때, 많은 교인들이 그것은 바로 병자나 장애인 자신의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비난의 화살을 그 당사자에게 돌려서 그를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위험하고 잘못된 신앙의 탈을 쓴 이데올로기인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치유가 당사자나 주위 사람들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야 할 교회가 오직 이데올로기적 사고와 그 사고에 기초한 허위 신앙으로 인해 교회를 찾아 온 누군가의 상처를 더욱 심화시키고, 소외시켜 정죄하여 결국 교회 공동체를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질병과 장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가난과 실패, 어려운 형편과 당면한 난제들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오히려 그런 비난과 정죄와는 반대로 주님의 사랑으로 안고 받아주어야 합니다. 교인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도 믿음으로 나아가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만약 우리 주위에 누군가가 열심히 기도하고 몸부림쳐도 병이 낫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미 많은 실패와 상처를 안고 있는 그 사람에게 또다시 믿음이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화살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오늘의 본문처럼 침상을 메고 주께로 나온 네 사람의 믿음을 기억하면서, 그 주위에 있는 우리가 믿음이 부족하기에 아직 좋은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더욱 분발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공동체며,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세상은 장애를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고 소외시키지만, 교회는 오히려 주님의 사랑으로 장애인에게 더 큰 관심과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찬송가 411장 ‘예수 사랑하심은’의 3절 가사에는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라고 하면서, 성도들과 교회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2절 이하에 보면 “몸의 연약한 지체가 오히려 더 귀히 여김을 받고, 아름답지 못한 지체가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어지는 26절의 말씀대로 “교회는 한 몸이기 때문에 고통 받는 한 지체로 말미암아 모든 지체들이 함께 고통 받으며, 영광을 얻는 한 지체로 말미암아 모든 지체들이 함께 즐거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uergen Moltmann)은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바로 ‘형제 자매공동체’임을 강조합니다.
목회자로서 병자나 장애인이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당사자에게 “오직 주님만이 당신의 모든 것을 도울 수 있으니 바로 당신의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라”고 권면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의 어려움이 지속되는 것은 그 옛날 한 중풍병자를 메고 주님 앞으로 나온 네 사람과 같은 믿음을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해 그런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 믿음의 부족함을 지적하며 더 큰 관심과 사랑의 믿음을 촉구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믿음과 그에 따른 결과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지 어느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고 책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그랬듯이 앞으로도 교회가 믿음의 공동체가 되고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에게 믿음이 없음을 탓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돕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함을 회개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의 네 사람들은 분명히 뇌병변장애인을 잘 알고 그를 동정하고 돕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한 병자를 예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남의 집 지붕을 뜯어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고대 이스라엘의 지붕은 뜯어내기 쉬었다고 하지만, 복음서는 분명히 이런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기이한 일임을 전제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한 명의 영혼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 지금도 지붕을 뜯어내는 것과 같은 결단과 도전과 모험을 시도해야 합니다. 사랑은 위대한 일을 행하게 합니다. 믿음은 나를 구하고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그들의 믿음’은 한 뇌병변장애인을 회복시켰습니다. 그의 건강을 회복시켰을 뿐 아니라, 그로 하여금 죄 사함을 받게 하였으며, 사회 구성원으로 회복시켰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능력, 죄 사함의 능력, 치유의 능력, 구원의 능력 때문입니다. 만약 그 외의 또 무엇이 있어 주님의 이런 능력을 나타내시는 데 한 계기가 되었다면, 그것은 사랑과 믿음으로 한 명의 뇌병변장애인을 주님께로 인도한 네 사람들의 믿음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장애인들에게 이 네 명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만의 종교적 이기심에 가득 차 뇌병변장애인과 그를 돕고자 하는 네 명의 사람들을 보지 못하는 바리새인이나 율법교사의 무리들이 아니라, 많은 무리들을 탓하지 않고 지붕을 뜯어 주님께로 인도하는 네 명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의 믿음’이 네 명만의 믿음이 아니라 주님께로 몰려온 모든 무리들의 믿음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 작성자: 최대열 목사/ 명성교회 부목사, KNCC 장애인소위원회 위원)
- KNCC 장애인 정책토론회, "교회, 장애인 예배권 보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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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NCC가 4월 13일 '장애인차별금지법과 한국교회'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장애인 전문가들은 한국교회가 장애인에게 충분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장애인들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지난 3월 6일 제정되었다. 흔히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모든 생활 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은 사람의 권익을 구제해 장애인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 목적이다.
장차법은 2008년 3월 시행이 될 예정이다. 대체로 장애인들은 반가운 기색을 보이고 있지만, 법률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총무 권오성 목사)가 '장애인차별금지법과 한국교회'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열었다. 장차법의 쟁점과 교회의 역할 등을 논의한 토론회는 4월 13일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열렸다. 토론에는 이문희 목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정책연구실장)·이철용 목사(위드뉴스 대표)·양동춘 목사(베데스다나눔교회) 등이 나섰다.
한국교회가 장애를 가졌다
토론은 한국교회에 대한 성토에서부터 시작됐다. 한국교회가 장애인 문제에 소홀하다는 지적이었다. 이문희 목사는 장애는 사람이 가진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가진 것이며, 특히 교회가 장애를 많이 가졌다고 했다. 그는 "오늘 나는 특수한 자동차를 타고, 또 엘리베이터를 타고 토론장에 무리 없이 올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갈수 있다면 장애가 없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자동차가 없고,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면 어떡하겠는가. 이런 일을 무수히 많은 교회에서 겪는다. 많은 교회가 장애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장애인이 도움이 필요해 장애인 시설에 들어가면 핸드폰을 못 쓰게 하고, 밤에는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한다. 최근 한 시설에서 나가려는 장애인을 사회복지사가 죽인 경우도 나왔다. 이런 인권유린이 기독교 시설에서도 많이 일어나는 게 현실이다"라고 꼬집었다.
한국교회가 장차법 제정에 따라 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도 지적했다. "교회에서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만약 불만을 품은 장애인들이 교회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며 교회의 잘못을 알린다면 교회는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장차법 49조에는 '차별행위를 하고, 그 행위가 악의적으로 인정되는 경우 법원은 차별을 한 자에 대하여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목사는 "교회에서 장애인을 보기 어렵다. 그들이 있을 만한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장애인의 편의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농아인 교회, 시각장애인 교회 등 장애인만을 위한 교회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예수님은 장애인을 구별하지 않는데 왜 따로 예배를 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장차법 시행령 보완해야
장차법 자체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 법의 실효성이 의심스럽다는 주장이었다. 이철용 목사는 "장차법 제정 자체는 장애계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청와대에서 기습시위가 벌어지는 등 희망적이지 않은 전망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법의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 장애인들이 배제되었다. 법무부·보건복지부·인권위원회 등이 회의를 했지만, 장애인들의 대표는 참석하지 못했고,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 장애인 문제의 특수성을 생각하면 법의 실효성에 의문이 생긴다. 회의 내용을 나중에 전달 받은 장애인들은 분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목사는 시행령 보완에 장애인이 참여해야 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정치인들은 심도 있는 토론으로 장차법을 다루지 않고 정치적 논리를 가지고 접근했다. 시대와 인권상황에 맞는 법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장애인들의 의견이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한국교회 장차법에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그는 교회가 장차법과 관련한 메뉴얼을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그는 "장애인에 애정을 가지고 투자하는 교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교회는 장애인이 없기 때문에 왜 준비하느냐는 입장이다. 잘못된 생각이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없기 때문에 장애인이 교회에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 목사는 "장애인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비용을 감당하는 것이 예수의 정신이다"라며 교회가 장애인들의 불신을 씻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양동춘 목사 목사도 교회가 준비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그는 "이제 교회가 심판대에 오른다. 교회가 장애인의 접근권과 예배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소송에 휘말린다. 하지만 장애인도 사람이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여건을 제공해주면 마음이 통한다"고 했다.
또 그는 "교회가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목회자들은 장애인들에게 못해주는 게 있으면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 당연히 제공해줘야 할 것을 못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애인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은 교회의 의무라는 것이다. 그는 교인 200명 이상의 교회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휠체어 탄 예수님, 교회로 안 오실 것
일반 참가자들도 토론에 참가했다. 김형진 목사(예장통합 농아인선교회)는 "교회가 건축을 할때 장애인들을 배려하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교회가 장차법과 관련 메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휠체어를 타고 오신다면 엘리베이터가 없는 교회에는 가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말했다.
뇌성마비 시설을 운영하는 장은희 원장은 "이미 설치되어 있는 시설도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휠체어를 위해 경사로를 설치해 놓고 짐으로 막아놓은 것을 봤다. 목회자들과 교인들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 특히 신학교에서 장애인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커리큘럼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KNCC활동 외에 일반 목회도 하는 유원규 목사(한빛교회)가 토론회를 마무리했다. "한국교회는 아직도 장애인에 대해 우월한 위치에서 뭔가 해주고 있다고 착각한다. 나부터 회개해야겠다. 교만하지 않고, 장애인과 연대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대통령 및 국회에 차금법 원안 통과 요구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권오성)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유원규 목사)는 성적지향을 포함한 7개항이 삭제된 "차별금지법"을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원안대로 재 개정해 받아들여질 것을 촉구하는 입장 서안을 노무현 대통령과 임채정 국회의장 그리고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 대표와 원내대표에게 보냈다.
NCCK는 성적 지향을 포함한 7개 항목에 "고용, 교육기과느 법집행 드"에서 차별을 받고 괴롭힘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문명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기독교의 이름으로도 차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7개항의 삭제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과 불신을 다시 확인하는 것일 뿐이며, 더우기 차별 구제에서 실효를 낼 수 있는 시정 명령과 이행강제금 부과 및 징벌적 손해배상 항목도 함게 된 것은 더욱 황당한 일이려 이는 인권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기본 전제 조건을 포기한 행위라고 밝혔다.
차별금지법은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안’대로 제정되어야 합니다.
대강절, 아기 예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12월 4일, 7개 항목이 삭제된 ‘차별금지법’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되어 국회통과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귀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차별금지법 제정은 헌법의 ‘평등 원칙’이 우리 사회 속에서 실효성을 가져 평등과 인권 증진을 위한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것입니다.
법무부가 처음 입법예고한 ‘차별금지법’은 차별 금지 항목을 20가지로 상정하고, 그에 따른 고용, 교육기관, 법 집행 등에서 차별을 받거나 괴롭힘을 당할 경우 구제조치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차별금지법’은 성적 지향을 비롯해 출신국가, 언어, 학력, 병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 등 7개 항목이 임의로 삭제되었습니다.
7개 항목 중 ‘성적 지향’에 대해 일부 기독교계에서 반대의견을 내어 문제시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적 지향’에 대해 아직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기독교계 또한 성서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견해를 달리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성적 지향’을 포함한 7개 항목에 ‘고용, 교육기관, 법집행 등’에서 차별을 받고 괴롭힘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문명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기독교의 이름으로도 차별할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과 불신을 다시 확인하는 것일 뿐입니다. 차별 구제에서 실효를 낼 수 있는 시정 명령과 이행강제금 부과 및 징벌적 손해배상 항목도 함께 삭제되어 더욱 당황케 합니다. 이는 분명 인권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기본 전제 조건을 포기한 행위입니다.
70, 80년대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무참히 유린당하던 시기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인권은 하나님이 주신 지상의 가치라고 외쳤으며, 지금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것이 교회의 선교 사명임을 확신합니다.
본 협의회는 차별금지법안이 국가인권위원회가 수년간 전문가 그룹의 조사연구 결과로 권고한 원안대로 제정되기를 바라면서, 현재 국회에 상정된 차별금지법안의 개정을 촉구합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 무 권 오 성
정의평화위원장 유 원 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