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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대화
- 2006년 신년예배
- 병술년 새해 KNCC와 온 땅에 하나님의 은총을 기원하며 힘찬 출발을 다짐하는 신년예배가 2006년 1월 3일 백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드려졌다.예배는 전광표 사관(구세군대한본영 사령관)의 인도로 나명환 목사(기독교대한복음교회 총회장)의 기도, 성영자 장로(여성위원회 부위원장)와 윤석민 회장(한국기독청년협의회)의 성경봉독, 성공회 사제 중창단의 특별찬양에 이어, 박경조 주교(회장)의 말씀이 있었고, '교회의 갱신과 일치를 위해', '평화공존과 통일을 위해', '소외된 이웃과 사회정의를 위해' 안영로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 박원근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서상식 목사(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장)가 각각 특별기도를 드린 후, 백도웅 총무의 인사와 신경하 감독회장의 축도로 마쳤다.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 박경조 주교는 “지금은 한국교회가 또 한번 결단해야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전망하고, “안전과 명성과 권력을 포기하고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 민중들의 고난의 현장에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우리도 그 길을 걸어가자”고 전했다.
아래는 백도웅 총무의 인사와 박경조 회장의 설교 전문이다.
2006 신년인사
병술년 새해에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들의 가정과 섬기시는 교회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난해에는 유달리 자연재해로 인해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지구촌 곳곳에서 고통에 처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과거사청산문제를 비롯해 황우석 사건, 사학법, 북한인권법, 쌀개방 등 사회적 쟁점들로 인해 혼란을 거듭하였습니다. 그 여파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기독교가 이 일에 앞장서는 듯 사회적으로 비춰진 것입니다.
올해 몇 가지 문제는 더욱 논쟁이 될 것으로 보여 집니다. 남북관계의 화해와 협력을 비롯한 한반도의 평화, 민주적 변화를 위한 과거사청산과 개혁, 생명이라는 근본적 가치기준에 입각한 발전 등입니다. 이에 대한 상호간의 이해의 부족으로 혼돈과 극단이 심화되리라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는 분명 화합과 일치를 지향하는 거룩한 구성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2006년 2월에 세계교회협의회 제9차 총회가 <은총의 하나님, 세상을 변화시키소서>란 주제로 포르트 알레그로에서 개최됩니다. 주제에서 보듯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은총에 의한 변화가 필요한 곳입니다. 이러한 고백 위에서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와 함께 지구화 문제와 폭력성에 대해 공동 대응하는 데 힘을 모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올해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국제회의인 ‘스위스 글리온회의(1986년) 20주년’을 맞습니다. 지난 해에는 남북교회가 <금강산 기도회․ 성가제>까지 치러냈습니다. 이제는 우리 기독교가, 세계 교회의 기도에 힘입어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위한 구체적인 교류와 협력 사업을 강화시키고, 온 민족이 실질적 평화통일의 삶을 열어갈 수 있도록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할 때입니다.
더불어 생명문제, 인권문제, 정의와 평화의 문제 등에 대한 성서 신학적 이해를 증진하기 위한 사업들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초교파적으로 대 사회적 책임과 참여에 보다 헌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총회에서 결의된 “발전과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 활동을 통해, 향후 교회협이 명실공히 한국교회를 아우를 수 있는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지혜 모아주시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세월, 교회협은 분명 교회 내외적으로, 우리 역사 속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그 역사는 교회협에 애정을 가지신 많은 분들의 변함없는 지지 가운데 자라왔고 열매 맺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진일보를 위한 여러분들의 관심과 헌신적 참여를 부탁드리며, 새 희망으로 시작하는 올해에 여러분들과 함께 한국교회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6년 1월 3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 무 백 도 웅
신년 하례회 설교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세상의 날수로 보면 오늘이 병술년 새해가 되는 때이지만 교회의 전례력으로 따지면 성탄후주일입니다. 해아래 새것이 있을 수 없고 어제와 오늘이 서로 다를 수 없습니다만 우리가 새해라고 이름을 짓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지나간 과거를 정리하고 무언가를 새롭게 결심하고 새로운 일을 하고 싶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한반도의 역사는 동과 서가 만나는 자리요. 러시아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대륙권과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해양권의 세력이 서로 다투는 자리이며 남과 북이 서로 만나는 곳이며 어제와 오늘이 서로 만나고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발을 딛고 서있는 이 자리는 혼돈의 자리요 갈등과 다툼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다양한 색깔이 한데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상생의 삶, 새로운 평화의 삶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할 것입니다.
오늘 성서의 말씀은 세계성서 정과표에 따른 본문입니다. 요한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입을 빌려 예수를 소개하면서 예수를 바라보라고 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로다.”
공동번역은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오신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던지 우리의 삶은 우리가 바라보는 것을 지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감각과 본능, 그리고 우리의 집단의식은 언제나 예수가 아닌 다른 것을 바라봅니다. 먹음직하고 보기에도 좋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고 좋아 보이는 것을 보고 그것을 취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성공과 안전을 바라보고 그것을 확보하기 위해서 투쟁합니다. 명예와 권력을 바라보고 그것을 취하기 위해 달려갑니다. 자신이 바라보는 그것을 위해 경쟁을 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 싸우고 죽입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청와대를 바라보며 그곳으로 가기위해 투쟁하며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 NCC도 한때는 예수를 바라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고난을 받는 예수를 바라보면서 예수를 따라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NCC가 예수를 바라보지 않고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오늘 성서에 나오는 세상-코스모스-라고 하는 말은 요한복음에서 아주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 지고 있는 말입니다. 요한복음이 말하는 세상은 정의와 평화와 사랑의 가치가 아닌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가치를 지향하며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무한경쟁의 살벌한 세상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은 예수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 한가운데서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의 가치가 아닌 새로운 가치가 지배하는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 열어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를 바라본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다른 것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본성은 명예를 바라보며, 권력과 힘을 바라보며, 성장과 숫자를 바라보며, 나의 성공과 승리를 바라봅니다. 참으로 자신의 존재 깊은 곳에서 예수를 바라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것을 포기해야만 예수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은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 길이 부끄러운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돌이켜 예수가 가신 길을 따라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또 한번 결단을 해야 할 시기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단은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서 눈을 들어 예수를 바라보는 결단입니다. 우리 자신을 과감히 포기하고 예수를 바라보며 예수를 따르는 결단입니다. 자신의 힘과 권위를 완전히 포기하고 철저히 하늘의 음성을 따랐던 예수 그리스도의 길, 자신의 안전과 명성과 권력을 포기하고 숨어계시는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이 땅위에 실천하심으로 하느님을 드러내셨던 주님의 뒤를 따르는 결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골 갈릴리 처녀의 몸을 통해 당신의 아들을 이 땅위에 보내시고,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과 함께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지금도 아무도 몰래 우리가운데 탄생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새롭게 시작하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노숙자들 가운데서 이주 노동자들의 비참한 노동현장의 한가운데서 농민들의 분노와 한숨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침 속에서 주님은 지금도 탄생하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예수께서 옛날 유대교의 울타리를 넘어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세우신 것처럼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민중들의 고난과 한숨과 고통가운데 현존하시며 그들과 함께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들 가운데 계시는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양 예수를 바라보며 우리도 그 길을 가야만 합니다. 이 세상의 갈등과 분열과 전쟁과 폭력을 짊어지고 가시는 예수를 바라보는 자는 그에게서 구원의 희망을 바라보고 그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새해 병술년을 맞이하는 오늘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를 이끌어 오신 것처럼 그렇게 다시한번 우리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이 나라의 백성들이 이 KNCC를 통해 하늘의 소리를 듣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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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대화
- 발전과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 1차 공청회 정리
- KNCC발전과개혁을위한특별위원회(위원장 김상근 목사)는 2월 9일 오후 2시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 어떻게 할 것인가 : 에큐메니칼 운동의 과제와 실천’이란 제목으로 제1차 공청회를 개최했다.인사말을 통해 김상근 위원장은 ‘이번 공청회는 NCC의 방향과 과제 발굴 작업, 그리고 대안 모색이라는 목적을 갖고 시작 되었으며, 전제 없이 모든 개연성을 가지고 함께 그려 가고자 한다’고 이번 공청회의 의의에 대해 설명했다.
‘현대 에큐메니칼 신학의 방향과 한국교회’란 제목으로 첫 번째 발제에 나선 심광섭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는 먼저 “에큐메니칼 신학은 20세기 이래로 인간과 사회 및 세계의 제 문제를 분석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를 분명하게 표방해 온 신학인 만큼 전위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환기시켰다.
심 교수는 한국의 에큐메니칼 신학 역시 이런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즉, 1970년대 이후의 민주화 운동과 인권 운동, 1980년대 중반부터의 통일운동이 "이론으로부터 실천이 나온 것이 아니라 운동과 실천을 반성하기 위해, 혹은 뒷받침하기 위해 나온 것이 한국 에큐메니칼 신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신학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1)인권과 평화 2)통일운동과 통일신학 3)세계화/지구화에 대응하는 신학 4)종교간 대화와 협력 5)문화비평의 신학 혹은 예술신학 그리고 6)에큐메니칼 신학을 교회에 확산해 가야할 필요성이 과제로 던져져 있음을 지적했다.
심 교수는 WCC 창설의 공헌자인 올담(J. H. Oldham)의 말을 인용하며 발제를 마쳤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최대 관심사는 교회를 자기중심적인 경향에서 자유롭게 하고,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과제를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 교회를 모으는 것이다. 혹자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크리스챤의 사회운동쯤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운동은 교회의 참된 과제를 재발견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스도가 어떻게 우리의 평화인지 우리 사회에서 분명히 밝혀야 하는 것은 교회의 과제이다."
두 번째로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과제와 실천’이란 제목으로 발제에 나선 유경재 목사(안동교회 원로)는 "먼저 에큐메니칼 운동을 바르게 전개하기 위하여 이제까지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문제가 무엇인지 짚어보면서 실천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며 운을 뗐다.
유 목사는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문제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첫째, “교회는 교회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하는 신학적 인식을 확산하는데 실패했다.
둘째, 해외 교회의 지원과 열정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만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일치와 연합을 위한 운동이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셋째, 지도력을 가진 지도자의 부족이다.
넷째, 지역 조직을 가지고 있지 못하여 중앙 중심의 운동에 그치고 말았다.
다섯째, 평신도들이 활발하게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 장을 넓히지 못하고 있다.
여섯째, 해외교회의 지원이 끝나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지적된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다음의 사항을 제시했다.
1) 에큐메니칼 신학의 확산을 위해 신학교 교과목에 에큐메니칼 신학이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2) 교단협의체의 성격을 강화하기 위해서 각 교단 실무자인 총무 또는 사무총장들과의 실무협의 수준을 높여야 하며, 회원교단 확대를 위해 보다 조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에큐메니칼 기관들의 대표를 회원으로 받는 방법도 조심스럽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3) 지도력 강화를 위해서 에큐메니칼 활동가, 청년, 여성의 참여 강화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4) 지역으로의 확산을 위해 지역협의회와 긴밀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
5) 평신도 참여를 위해서 신도회조직, 청년조직을 조직과 활동에 포함시켜야 한다.
6) 재정문제에 대해서는 ‘에큐메니칼 펀드’를 조성하고 마련해야 한다.
신학자와 목회자의 발제에 이어서, 부문별 논찬이 이어졌다. 여기에는 지역 NCC, 전국목회자 조직, 청년, 여성, 기독교언론 측에서 참여했다.
서일웅 목사(대구NCC 인권위원장)는 “교단간 협의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일환이지 목적이 될 수 없음”을 지적했다. 이에 NCC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교단간 일치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지역, 소수자 옹호 그룹 등과의 연대 강화"를 새롭게 모색해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명기 목사(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공동의장)는 "교회의 본질적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NCC는 민중의 삶에 감동과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지적하고, 최근 쟁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양극화 문제 해결에 관심과 노력을 경주해 줄 것을 주문했다. 또한 구조 변화의 방향에 대해서는 교단협의체의 구조 틀을 벗어나서, 자발적 그룹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네트워크 운동을 전개해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문숙 목사(한국교회여성연합회 총무)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꼭 ‘NCC 중심의 운동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애초 문제제기나 기대가 현실적이지 않음을 지적했다. 이 목사는 "중요한 것은 참 교회 만들기이다." 이에, 과제로서 1)여성과 생명시각 즉, ‘평화를 이루는 교회’ 패러다임을 지향해야 하며, 2) 교회론에 대한 비전 공유, 합의정신 실천을 통해 코이노니아(koinonia)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선애 총무(대한예수교장로회 청년회전국연합회) 무엇보다 “사업의 계획단위와 실천 단위가 가까워져야 한다”고 말하고, 현재 에큐메니칼 운동 진영의 구성인자의 편향성(남자, 목회자, 교수 등)을 비판하며 전문적인 젊은 일꾼 양성의 필요성을 제언했다.
마지막으로 교계언론을 대표해 홍순현 부장(기독교신문)은 "지금 벌이고 있는 특위 활동이나 논의가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새틀짜기’ 시도를 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특정 교단의 이해를 반영하기 위한 논의로 흐르거나, 자리를 배분하기 위한 퇴행적 사고에 따라 소모적 논쟁을 벌이는 것도 곤란하다." 고 지적했다.
발제와 논찬에 이어 진행된 전체 토론에서 참석자들의 다양한 의견이 나왔는데, 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장단기적 계획이 준비되어야 한다.
개 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 참여가 가능하려면 목회자들의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에큐메니칼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고난받는 이들을 대변하는 교회 연합체로서 예언자적 사명을 회복해야 한다.
교단, 목회자, 평신도 등 현재의 구조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회원교단 협의체가 아닌 지역 교회 연합체운동으로 가야 한다.
인권, 평화, 생명을 주제로 한 역동성을 살려내야 한다.
사회적 쟁점에 대해 성서적 접근을 시도하고 교회에 제시해야 한다.
돈, 권력, 맘몬의 현실 지배질서에서 벗어나 모든 만물의 하나됨을 지향해 나가야 한다.
- 2006년 부활절 메시지
- 2006년 KNCC 부활절 메시지
그때 천사가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무서워하지 말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를 찾고 있으나,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다. 전에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고 당신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거기에서 그분을 뵙게 될 것이오.(마태복음 28장 5~7절)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이며, 생명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빛이 온 세상을 골고루 비취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지금 분단의 고통을 극복하고자 민족 구성원 모두가 화해와 협력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21세기 선진국 진입을 위해 정치뿐 아니라 사회 문화적으로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주도의 패권세력은 북을 압박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 정착에 위협을 가하 고 동북아의 평화에도 불안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패권주의와 맞물린 지구화 문제는 우리 사회 전반에 심각한 양극화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국가이기주의에서 비롯된 전쟁과 그로 인해 희생당한 사람들, 자유시장경쟁에서 낙오된 사람들, 개발논리로 인해 곳곳에서 쫓겨나는 사람들, 빈곤의 심화로 파괴되는 가정들. 이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더 이상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해 나가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들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에 반하는 것으로서 반민주, 반평화, 반인권, 반생명적 흐름입니다.
이제 한국교회의 1천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은총 가운데 허락하신 모든 물질과 인적 자원을 예수님께서 부활의 생명임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일에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으로써 한반도에 그리스도의 평화를 선포하고, 온 세상을 양극화로 몰고 가는 지구화문제에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정한 희망이고 생명임을 온 땅에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이 일에 앞장 서 헌신하는 모든 이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06. 4.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 무 백 도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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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대화
- 권오성 목사 KNCC 총무 취임 감사예배 보고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KNCC) 신임 총무인 권오성 목사의 '신임 총무 취임 감사예배'가 11월 30일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드려졌다.
신임총무 감사 예배에는 에큐메니칼 인사들과 관계자들 등 200여명이 참석하여 신임총무의 취임을 축하했다.
예배순서는
사회는 김기택 감독(KNCC 부회장), 기도는 이삼용 목사(KNCC 부회장), 성경봉독은
서미숙 장로(기장총회 부총회장), 특별찬양은 수도교회 크로마하프 찬양단, 설교는
'희망으로 커 가는 연합운동'이라는 주제로 신경하 목사(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가,
축도는 박경조 주교(대한성공회 주교)가 진행하였다.
격려사는
김상근 목사(KNCC 전 부회장), 김순권목사(KNCC 전 회장), 축사는 박상증 목사(참여연대
공동대표)가 격려와 축하의 말을 전했다.
취임
감사 예배 설교본문 '희망으로
커 가는 연합운동' (눅 13:18-21)
신경하 목사(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오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취임감사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축원드립니다.
먼저
제55회 총회에서 취임하여 오늘 감사예배를 드리는 권오성 목사님께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권 목사님이 젊어서부터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평화통일, 세계 속에서
선교동역자로서 활동한 일, 특히 현장교회에서 일선 목회자로 수고했던 모든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지금의 NCC를 위해 준비된 총무라고 믿습니다.
바라기는
한국교회가 권 목사님을 추천하고, 선택한 것은 그동안 NCC 80여년 역사를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힘찬 전진의 시대를 열어 가기를 바라는 기대가 담겨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의 발전과 한국 기독교 의 부흥과 성숙 더 나아가 우리 사회와
민족을 위한 새로운 헌신과 열심을 불러일으키는데 불씨가 되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사실
여기에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는 권 목사님께 NCC라는 무거운 짐을 맡겨드린데 대한
부담과 책임도 있습니다. 지난 1990년대 이후 우리는 새로운 시대변화에 긴밀하게
대응하지 못하였고, 건강한 의제를 발굴하여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지도
못하였고, 우리 조직의 재정 능력을 키우지도 못했으며, 교회 간에 협력과 친교를
강화시키지도 못했음을 자성하고 있습니다. 지난 총회에서 발표된 개혁안은 바로
우리 자신의 과거의 유산이며 동시에 미래의 자산입니다.
우리는
NCC의 전통과 정체성을 사랑하며 견지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개혁하는
일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리모델링하는 일에도 주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지닌 두려움의 정체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겨자씨의
불안입니다. 우리는 현재 규모의 논리에 비추어 NCC의 존재를 과소평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NCC의 힘을 물질적 능력으로만 오판하여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소홀히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겨자씨의
불안은 가진 것이 너무 작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물질은 상대적이어서
사람들은 항상 남보다 적게 가진 것을 의식하고, 늘 필요와 쓸모를 호소하게 마련입니다.
현대의 맘몬과 골리앗은 카리스마적인 권력과 독점적인 부의 축적 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는 존재보다는 소유를 지향하는 병든 인간성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다윗은 골리앗의 위세에 눌려 번번히 싸움에서 실패하고 있습니다.
브라질의
돔 헬더 까마라 대주교는 다윗이 쥔 물맷돌을 가르켜 이렇게 비유한 일이 있습니다.
물맷돌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 진리에 대한 확신, 정의에 대한 확신, 선에 대한 확신,
사랑에 대한 확신, 이렇게 다섯 개라는 것입니다. 사실 거대한 골리앗 문화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진리, 정의, 선, 사랑에 대한 메시지들은 별로 먹혀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의
다윗은 골리앗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그것이 겨자씨의 불안의 실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는 인간의 가치기준에 일대혼란을 가져왔습니다. 양과
크기로 볼 때 거의 ‘무’ 에 가까운 겨자씨와 누룩 안에 하늘나라를 잉태하고 있다는
선언은 우리를 향해 물량적인 불안으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한 것입니다. 천국이 겨자씨
안에 담겼다는 말씀은 얼마나 큰 역설입니까?
우리는
겨자씨의 불안을 마치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부족함과
한계 속에서 하늘나라의 둥지를 틀고 계십니다. 비록 겨자씨만한 크기지만 거기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결합될 때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양을 추구하는 생활에서 질을 추구하는 생활로
삶의 방식의 전환을 촉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적은 규모에 흔들리고, 주눅 들어 있지는 않습니까? 불투명한 미래에 근심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닌 겨자씨는 위대한
하나님 나라를 잉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믿음이며,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세계교회
대표적인 연합운동의 상징은 바로 ‘방주’입니다. 사실 방주는 인류 처음교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연합운동의 지향인 ‘오이쿠메네’는 교회야 말로 새로운
세계를 잉태할 오늘의 방주라는 뜻인 것입니다.
이
방주에는 각양각색의 인종과 언어와 문화가 담겨있습니다. 육식동물과 초식동물간의
먹이사슬도 방주 안에서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노아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하는 모습으로, 평화의 항구로 안내할 선장이요, 봉사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방주는 일치와 연합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치와 연합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강화되어야 합니다.
사실
오늘 우리시대에 튼튼한 방주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조선기술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과 같은 양육강식의 법칙에 의해 강자만 존재하는 세계를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이 세상의 도덕과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이 너무 하나님의 뜻과 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오늘 우리시대의 방주를 자처한 교회들은 배구실을 하기 어려울 만큼
낡고 손상되어있습니다. 크게 수리를 하고 개조를 하기 전에는 물에 뜰까도 의심스러운
형편입니다. 사람들에게 안전도에 있어 신뢰를 잃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방주 안에는
밑도 끝도 없는 분쟁과 갈등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구원의 희망은 커녕, 적신호가
켜져 있습니다.
지금
NCC의 문제는 한국 기독교 전체의 문제요, NCC의 존재는 세계교회 전체와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NCC를 개혁하는 일은 우리 내부만을 수리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 외부까지 변화를 완성해 나가는 것이며, NCC가 설계하는 비전은 세계교회 전체의
희망과 공유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다시 한번 이 시대에 어울릴 튼튼한
방주를 함께 만들어 나가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는 새로운 출발과 함께 이미 주신 언약을 갱신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모든 회원교회 그리고 우리 시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모든 이웃들에게 언제나 사랑과 평화를 베푸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총무
취임 격려사
김상근
목사 (KNCC 전 부회장)
절더러는 격려의 말을 하라 합니다.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하여 겨우 열흘이 지났을 뿐입니다. 그런데 격려의 말이 왜 필요한 것일까? 이 자리는 축하의 자리인데 정작 축사는 한 분이고 격려사가 둘입니다. 벌써 지친 것일까? 그렇습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지금 권 총무는 산이라도 들어 옮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과 패기에 차 있을 것입니다. 그럴 것입니다. 그래야 합니다.
도저히 동시에 이루어낼 수 없는 두 일을 동시에 추진하는 사람에게 주는 충고가 있습니다. ‘한꺼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지 말라.’ 그렇지요. 그것은 실패를 예약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어느 한 마리도 잡지 못할 것입니다. 도망치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내는 일이란 도대체 불가능한 일입니다.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 하는 것은 분명히 무모한 짓거리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권 총무님, 총무님은 지금 두 마리 토끼 쫓기를 포기해서는 안 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NCC 총무가 하는 일이란 도대체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언젠가는 잡아냈다고 선언하게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언제까지나 현재진행형입니다. 진보와 보수, 개인적 신앙을 추구하는 교회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자는 교회, 큰 교회와 작은 교회, 기득권을 가진 교인들과 민중 교인들, 두 마리 토끼들입니다. 이런저런 사회현안에 교회도 찬반으로 갈리기 마련입니다. 두 마리 토끼입니다. 이 두 토끼 모두와 함께 가는 것이 NCC 총무의 일입니다. 끝내 함께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힘든 일입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해야 합니다.
중도주의의 길을 가자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방향은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낮은 곳이 예수님의 방향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정의, 사랑, 거룩함이라는 말로 그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에게 주파수를 맞춘 색깔, 그 색깔 있는 총무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코드를 맞춘 맛, 그 맛이 있는 총무이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색과 자기 맛과 다른 색, 다른 맛을 포용하고 오히려 조화를 이루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래 그리하면, 한국교회가 어느새 그 색, 그 맛을 내는 한국교회로 방향지어지게 될 것입니다. NCC는 지난 날 이런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내와 끈기가 필요합니다. 총무님, NCC 총무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고달픈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 우리, 여기 모인 우리와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권 총무를 지원할 것입니다. 너무 힘들다 하지 마십시오. 든든하다 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 여기 모인 우리와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권 총무에게 힘을 모아줄 것입니다. 위축되지 마십시오. 자신 있게 나아가십시오.
그럴 때 우리, 여기 모인 우리와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권 총무를 위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내 걸음이 왜소하다 하지 마십시오. 나와 함께 하는 얼마나 많은 신앙의 동지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십시오.
권 총무님, NCC를 한국교회의 희망이 되게 하십시오. 아니, 세상의 희망이 되게 하십시오. 총무님, 한국교회에 다시 꿈을 세우십시오. 아니, 세상에 꿈을 안겨주십시오. 사랑하는 권 총무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르네상스를 이루어내십시오. 우리가 도울 것입니다. 아니, 성령께서 도우시고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2006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성탄 메시지
- 2006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성탄절 메시지
-그리스도의 평화가 고통당하는 모든 이들에게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누가복음 2장 14절)
온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사랑이,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모든 이들에게 참 평화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기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신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말구유를 찾아 오셨습니다. 주님의 오심은 세상의 부와 권력 그리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 세상으로부터 소외받고 멸시당하는 비천한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친구가 되고 평화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땅 곳곳에서는 기아와 질병, 테러와 분쟁, 반목과 질시에서 비롯된 억압과 공포를 경험하고 있으며, 절망과 고통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주변을 둘러보면 사회적인 양극화로 말미암아 고통 받는 이웃들이 도처에 있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외국인 이주 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인 약자들이 평화와 안정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미 FTA 협상, 평택 미군기지 이전, 사립학교법 재개정 문제, 북한 핵실험과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의 증대, 부동산 투기, 이라크 파병 철군, 일본의 군국주의 움직임 등 갈등과 분열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또한 전 세계 곳곳에는 전쟁과 기아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의 이웃들이 겪고 있는 이러한 고통과 문제들을 자본주의와 효율성의 논리만을 가지고는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2000년 전에 아기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경쟁이 아닌 나눔을, 승리와 지배가 아닌 희생과 섬김을, 증오가 아닌 사랑을, 분쟁과 전쟁이 아닌 평화를 이 세상에 선포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권세 있는 자들과 마음이 교만한 자들이 내쳐지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높여지고, 배고픈 사람들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이 주님의 길을 순종하며 따라 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아기 예수 오심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사랑을 고통 중에 있는 이웃들과 세상에 전할 때입니다. 소외받고, 고통당하는 이웃들과 그리스도의 충만한 은혜를 나눕시다. 그래서 소외받고 고통당하는 이웃들에게 주님의 평화가 넘치고, 이 세상에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희망이 넘쳐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2006년 12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 무 권 오 성
- KNCC 신년메시지
- 2007년 새해를 맞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우리 국민들과 교회가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온 세계에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평화는 전쟁의 부재가 아닌 덕성이며, 마음의 상태이고, 박애의 경향입니다. 또한, 신념이며 정의입니다. 성서에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마 5:9)고 했듯이, 우리는 지구를 공포로 몰아넣는 테러와 전쟁과 핵무기 확산의 공포에서 해방되어 온 세계가 평화를 만들어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사 2:4)
우리는 나라의 번영을 기원합니다.
우리나라가 번영 발전되려면 내적으로는 위정자들이 국민들에게 경제안정과 희망을 주어야 하며, 참다운 개혁 정신에 입각하여 정치적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외적으로는 남과 북이 대화와 교류, 협력을 통하여 평화통일의 길을 더욱 넓게 구축해 나가기를 바랍니다.(겔 37:16-17)
우리는 사회가 복지사회로 안정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건강한 사회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사회복지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며, 경제안정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가 상생 상존을 위하여 하나란 사실을 깨달아 “나누는 것이 곧 돌보는 것.”(사 58“ 6-12)이라는 인식이 새롭게 부각되기를 기원합니다. (마 22:37)
우리는 한국교회가 일치 연합운동을 통해 새롭게 부흥되기를 기원합니다.
한국교회는 우리나라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합니다. 2천 년대에는 영적부흥의 새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했듯이, 올해는 평양부흥 100주년을 맞아 교회가 먼저 일치와 연합으로 결속되어 회개와 갱신으로 나감으로써 성령의 바람이 새롭게 일어나는 전환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와 우리나라가 새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합 3:2, 요 17:11)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새해를 맞은 온 국민과 교회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2007년 1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 장 전 광 표